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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소리의 길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4-07 08:23:38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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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아늑한 봄날 밤이다. 먼 기차 기적 소리가 적막을 뚫고 긴 여운을 남긴다. 농익어가는 봄날 밤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음률이 실리지 않은 소리가 없다. 보이지 않기도 하거니와 만져지지도 않는 소리들이 질펀하다. 봄이 깨어나는 소리며 무르익어가는 소리까지 봄날은 밤은 밤 대로 낮은 낮대로 소리로 가득하다. 

소리를 들을 줄 알고 헤아릴 줄 알아야 계절과의 사귐을 가질 수 있는 것인데 꽃샘 바람이 요란스러우면 뉘우침으로 들리기도 하고 영혼이 쓴맛을 토해내는 소리로 들리는 것이 지레 속단일까, 소리의 길을 모른다면 소리 흐름도 붙잡을 수 없는 것, 꽃잎이 낙화하는 아우성까지 한계를 어쩌지 못하는 소리들의 난무 같지만 되려 청정하게 들리기도하고, 잦은 봄비 마저 미상의 곡조로 들리기도 한다. 어쩌자는 것인지 들리지도 않는 것 까지도 죄다 들릴 것 같은 꽃 봄 밤이다.

소리는 진동 과정을 그쳐야 하기에 고요하게 전달되지 못한다. 공기 떨림이, 바람의 파동이 귀청에 전해지고 비로소 소리를 느끼고 듣게 되는 것이다. 소리의 울림은 가슴으로 들어야 하고 눈으로 보아야 하고,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전해지는 공감이 없다면 듣게 되는 소리는 소리의 전부를 들었다고 할 수 없음이다. 소리가 들려오는 요건을 세분화 해보면 소리의 세기가 음향으로, 높낮이의 음파와 음색의 파장이 진폭을 만들면서 소리 궤도로 들어서게 된다, 이렇듯 다가온 소리는 촉수의 느낌으로 전달되면서 눈으로 전신의 느낌으로 전해진다. 

모든 피조물에는 움직임이나 파동이 있기 마련이라 상호 궤도가 어긋나게 되면 소음을 빚게 된다. 질서가 무너져버린 소음은 인간 무지가 만든 한계의 봉착이다. 세상은 지금 서로가 지켜내야 할 궤도를 벗어나면서 무절제하게 파생되는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로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소리들과 동행하는 것이라서 모든 소리들이 가지런하게 있어야 할 곳에 놓여있어야 할 절기의 길목 같은데. 기상이변 소용돌이 가운데 바람을 이겨내지 못하는 나무 가지들의 부대낌을 바라보면서 ‘누가 바람을 보았나요?’ 작가 크리스티나 로젯이 떠오른다. 

소리 존재여부를 드러내려 하는 서술을 빙 둘러서 풍자하 듯 바람에게 전가시키는 묘사를 선연한 문체로 밀도감있게 시현해냈다. 꽃잎이 낙화하는 시각에 바람이 지나갔기 때문이란다. 바람 흐름과 소리의 존재 여부를 시각적으로 처리한 오감의 기교가 새뜻하고 첨예하다. 소리의 길을 모색하려는 표출 기법이 소박하다.

지구가 자전, 공전을 이어가면서 우주와 스치는 소리를 특별한 녹음 장치를 통해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디지털 시대답다. 

지구와 우주가 만나면서 생성되는 소리는 마치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먼 파도 소리로 들린다 한다, 별이 쏟아지는 밤, 별들이 흐르면서 들려주는 소리는 어떠하며 별들이 운행하는 우주의 소리는 어떻게 들려질까. 지구 별에는 무르익어가는 봄 날이 빚어낸 현란하고 미묘한 소리들로 가득하다. 꽃 잎이 낙화하는 소리, 꽃나무 가지 사이를 휘도는 바람 소리, 산 새 소리, 다람쥐가 꽃나무 가지들을 건너 다니는 소리. 비가 되어 내리는 봄 소리까지 꾸밈없는 맑음 그대로의 소리들이다.

소리는 자연 그대로의 소리뿐만이 아니다. 하늘로서 내려주시는 전능자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면 심성에서 울림으로 우러나는 소리가 순수의 진수가 아닐까. 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넘치는 정보와 비축해야 할 것들이 갈수록 불어나는 세태로 가고 있다. 문명의 이기에 의존하면 할수록 정체성을 잃어가고 세상 유혹에 미혹되고 자유로운 취사 선택 조차 본인 의지와는 무관한 분별없는 선택이 반복될 위험을 안게 된다. 타인을 흉내내느라 보편적이고 선한 가치관을 외면하게 되고 타인의 삶에 몰입되는, 타인의 삶을 추종하느라 좌충우돌하는 삶을 배회하게 된다.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고 세상이 던져주는 소리에 몰두하다 보면 삶은 점점 힘겨워지는 고달프고 피폐해지는 삶이 되고 만다.

마음이 일러주는 소리의 길을 외면하고 타인의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들려오는 소리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게 되지만 소리의 길을 다스리는 자는 세상을 읽어낼 수 있다. 다양한 얽매임에서 벗어나야 선함이 이끌어주는 삶을 살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삶이란 덧없고 속절없는 망령됨에서 벗어나 심성 깊숙이 고여있는 소리의 길을 지혜롭게 간직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일상 중에도 마음의 소리가 명시하는 소리의 길에 집증하다 보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을 것이요,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요란 해도 마땅하고 떳떳한 바른 길로 들어설 것이다. 마음의 요소인 지, 정, 의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소리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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