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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의 하프타임] ‘윤석열 행정부’의 월권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4-04 15:26:41

조윤성의 하프타임, LA미주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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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LA미주본사 논설위원)

대한민국 헌법은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삼권분립’을 규정하고 있다. 행정부와 입법부 그리고 사법부를 엄격히 분리시켜 서로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른바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행정권의 힘이 입법부와 사법부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행정부 권력이 비대해지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행정부 수장에게 통치권이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 끊임없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입법부에 대한 영향력은 막강하다. 국회의원들 공천에 행정부 권력자의 의중과 입김이 작용해온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나마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이해가 어느 정도 돼 있는 일부 대통령은 이런 유혹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한, 제왕적 의식에 절어있는 대통령들은 대놓고 노골적으로 공천에 개입을 해 왔다. 이른바 ‘진박감별사’들이 등장했던 박근혜 시절이 대표적이다. 국회의원을 자신이 부리는 수하쯤으로 여기는 대통령과, 이런 대통령의 반민주주의 의식에 끌려 다니는 집권당 의원들의 모습은 삼권분립과 어울리지 않는다.

독재 권력이란 권력자 개인의 관점과 이해관계가 국가의 전 영역을 지배하는 일그러진 형태의 정치체제이다. 꼭 총칼을 앞세워야만 독재가 아니다. 권력자 한 사람의 고집과 취향 때문에 국가 과제가 왜곡되거나 뒤틀린다. 그 과정에서 삼권분립은 무시되기 일쑤이다.

지난달 윤석열 행정부가 밝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해법과 대통령 방일에 대한 역풍이 거세다. 방일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요미우리신문과 가졌던 인터뷰를 보면 그가 어린 시절 가본 일본에 대한 인상이 일본에 대한 그의 의식에 상당한 영향 미쳤음을 엿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해법이 자신의 고독한 결단의 결과물임을 강조했다. 권력자가 때로는 홀로 결단을 내려야하는 고독한 자리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일본에 대해 호감을 갖는 것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윤석열 행정부의 해법이 접근 방식이나 내용에서 철저하게 일본의 입장과 관점만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국가안보실 1차장은 “우리의 결정을 전달했을 때 일본은 ‘깜짝 놀랐다’며 ‘우리가 학수고대하는 해법’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해법의 초점이 100% 일본 측 시각에 맞춰져 있음을 드러내 주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피해자 중심’이 돼야 할 해법이 ‘일본 중심’이 돼 버린 것이다. 이런 해법은 요즘 많이 회자되는 용어를 빌리자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 줄 것 다 준 후 일본의 처분만을 기다린다는 식의 저자세이다. 정상회담에서 오간 내용과 관련해 일본 관료들과 언론들을 통해 무수한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한국정부는 똑 부러지게 이를 부인하거나 반박하지 못한 채 우물거리고 있다. 그러니 ‘친일 정권’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해법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2018년 강제동원 ‘불법성’을 인정하면서 한국 대법원이 내린 일본에 대한 배상 판결을 행정부가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행정부’는 피해자들에게 돈만 쥐어주면 된다는 식의, 금전보상에만 초점을 맞춘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완전 무력화시켰다.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자의적으로 뒤엎은 데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은 요미우리와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의 징용 재점화와 구상권 청구는 없을 것”이라며 일본을 안심시키려는 듯한 발언도 했다. 고작 5년짜리 정권의 수탁자가 마치 권력의 영구적인 주인인양 행세하고 있다. ‘리스’를 ‘소유’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법부에 대한 월권뿐 아니라 대통령실이 국민의 힘 대표 선출과정에 노골적으로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한 데 대한 비판도 여전하다. 내년 총선에서 박근혜 시절의 일그러진 공천 행태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삼권분립을 주창한 선각자는 몽테스키외와 같은 유럽의 계몽 철학자들이었지만 이것을 현실 정치에 처음 적용한 것은 미국 독립의 아버지들이었다. 그리고 헌법에 명시된 이들의 신념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미국의 행정부와 입법부 관계를 보면 상호 독립적이다 못해 오히려 의회가 우위에 서 있는 것으로 여겨질 정도다. 행정부와 연방대법원으로 대표되는 사법부와의 관계 역시 그렇다. 삼권분립은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소중하게 지켜야 할 현재의 가치라는 사실을 ‘윤석열 행정부’가 제대로 인식했으면 한다.                  

[조윤성의 하프타임] ‘윤석열 행정부’의 월권
조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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