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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유연성을 상실한 미국의 외교정책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3-27 12: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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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중동지역에 중국, 러시아와 이란에 의해 채워질 외교적 공백을 남기지 않을 것”이라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지난주 중국의 중재로 이루어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회복 시도는 이 지역에서 바이든의 선언과 정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란과 사우디아리비아의 관계복원은 그 자체만으로는 지각변동에 해당하는 대형 이벤트가 아니다. 양국 관계는 고작 7년 전에 단절됐다. 그러나 지난주에 발생한 사태는 근년 들어 한층 심화된 미국 외교정책의 고질적 결함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언론인 겸 학자인 요세프 요페는 1995년에 발표한 에세이에서 냉전 이후 미국이 선택해야 할 대전략의 두 가지 접근법을 제시했다. 그는 이 둘을 각각 ‘영국’과 ‘비스마크’로 이름 지었다. 첫 번째는 영국의 전통적인 지정학적 접근법이다.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신흥세력에 맞설 동맹체제를 구축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비관여 원칙’을 고수하는 방식이다. 요페는 이런 ‘힘의 균형’ 전략을 국제질서를 지탱하는 버팀목인 미국이 구사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대신 그는 프러시아의 원로정치인 비스마르크의 브로커 전략을 강력히 옹호했다. 비스마르크는19세기말 독일을 통일시켜 유럽의 주도국으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비스마르크는 독일에게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영토 확장이 아니라 프랑스를 제외한 모든 세력이 우리를 필요로 하고, 그들 사이의 상호관계에 의해 우리에게 적대적인 동맹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비스마르크의 연합 독트린은 ‘키신저 딕타트’로 불린다. 헨리 키신저가 아니라 비스마르크가 자신의 독트린을 체계화한 온천도시 바트 키신저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러나 한 세기 뒤에 엄청난 역사적 반향을 불러온 헨리 키신저의 외교적 승리는 비스마르크의 아이디어에 힘입은 바 크다. 소련과의 긴장완화를 시도하는 것과 동시에 중국과의 수교를 추진하면서 키신저는 기존의 중-소 관계보다 나은 미-중, 미-소 관계를 수립하는데 주력했다. 

사실 미국의 굵직굵직한 외교적 성공 사례는 한결 같이 비스마르크의 아이디어에 중심을 두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냉전기에 미국과 이스라엘 및 아랍국들 사이의 관계는 그들 사이의 개별적 관계를 능가했다. 미국의 미스마르크식 외교적 접근법은 유고슬라비아와 루마니아를 모스크바에서 떼어내는데 기여했다. 또한 이란 혁명 이전의 수십 년간, 미국과 이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는 사우디-이란 관계보다 좋았다.    

그러나 오늘날 워싱턴은 이같은 전략을 가능케 만드는 탄력성과 유연성을 상실했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너무도 자주 세계를 흑과 백, 동지와 적으로 나누는 거창한 도덕적 선언으로 짜여진다. 

그 같은 선언이 각종 제재와 법으로 고착화되면서 외교정책은 한층 더 경직된다. 폭발직전의 상태로 충전된 정치적 분위기 아래에서는 상대를 향해 그저 ‘적’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위험하다.   

지금 미국은 - 러시아, 중국, 이란, 쿠바, 베네수엘라, 시리아, 미얀마와 북한 등 - 많은 국가들과 아예 외교관계를 갖고 있지 않거나 제한적이고 적대적인 접촉만 이어가고 있다. 이 그룹에 속한 개별 국가에 반대하는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들 전체를 한 묶음으로 도외시하는 것은 경직된 외교정책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그저 이들 불량 국가의 정권 전복이 최선책이라는 희망사항에 매달린 채 회의실에 둘러앉은 상대국 대표들과 개별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꺼린다면 외교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없다.     

이건 바이든 행정부가 아니라 지난 수십 년에 걸친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이다. 

독불장군에 버금가는 미국의 지위는 외교정책 담당자들을 부패시켰다. 우리의 외교정책은 요구사항을 내걸고, 상대국에 위협과 비난을 가하는 것으로 점철된다. 상대방의 견해를 이해하고 실질적인 협상에 나서려는 노력은 거의 없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와는 사뭇 다른 접근법을 시도했다. 이란과의 핵 협상은 테헤란 내부의 온건파에게 힘을 실어주는 효과를 가져왔고, 이란과의 실무적인 관계 개선으로 이어졌다. 또한 경제 스파이와 같은 껄끄러운 이슈를 정면으로 밀어붙이면서도 중국과 깊숙한 관계를 유지하는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외에도 오바마 행정부는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 절차에 착수했고, 러시아와 실무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정치기후는 대체로 키신저식 외교에 적대적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백악관에 입성한 후 이란과의 핵 협약에서 탈퇴했고, 중국에 관세를 때렸으며 쿠바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베네수엘라 정부의 전복을 시도했다. 이같은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지만 트럼프식 외교정책 기조는 변경이 불가능할 정도로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바이든은 선거전 당시 대부분의 트럼프 외교정책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강경노선을 그대로 답습하는 쉬운 길을 택했다.     

이 모든 것은 타성에 젖은 노쇠한 제국을 떠올리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의 외교정책은 국내 선거구민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속 빈 수사를 일삼는 엘리트들이 담당한다. 문제는 현실과 유리된 이들이 바깥 세계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유연성을 상실한 미국의 외교정책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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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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