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삶과 생각]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2-27 16:40:16

삶과 생각,문일룡 변호사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문일룡(변호사)

아버지가 떠났다. 약 12년 전에 먼저 간 어머니를 찾아가신 거다. 거의 90년을 이 세상에서 사셨으니 장수의 복을 누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100세까지는 어렵지 않다고 누누이 얘기했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돌아가신지 3주가 지난 저번 주말에 장례를 마쳤다. 먼 곳에 가 계시다가 돌아가셨기에 시신을 이 곳까지 모시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장례는 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가족들만 모여서 조용히 치렀다. 50년을 이 지역에서 사셨으니 주위에 아는 분들도 많은데 소식을 알리지 않고 가족들만 모여서 마지막 인사를 드린 게 죄송스럽다. 아버지는 유가족과 친구들을 번거롭게 하는 일을 피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 원래 다른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일을 극도로 싫어했던 아버지의 성격을 기억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사람들 모두 각자 고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유독 특이했던 것 같다. 변화를 싫어하는 것만큼 인내심도 강했다. 돌아가실 때까지 거의 매일 아침식사는 라면이었다. 몸에 좋지 않다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소용없었다. 그리 안 좋다면 어떻게 당신처럼 오래 살 수가 있겠느냐고, 내가 반박이 궁한 논리를 내세웠다. 그래도 다행히 어느 시점부터는 혈압에 좋지 않은 염분 섭취를 줄이려고 라면 수프 양을 절반 이상 줄였다. 

미국에 취업이민을 와서 은퇴할 때까지 오직 한 직장에서만 근무하셨다. 영어를 잘 못 했기에 승진은 생각지도 않았지만 전동기 수리 기술에 대해서는 남다른 자부심을 가졌다.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정부 건물에서 사용되는 냉온방 장치 전동기의 상당수를 당신이 수리했다고 자랑하곤 하셨다. 나머지 가족들보다 1년 먼저 미국에 와서 일하는 동안 이 월급으로는 도저히 이제 곧 오는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힘드니 직장을 그만 둘 수밖에 없다고 고용주를 협박해서 파격적인 월급 인상을 유도했다는 아버지의 무용담은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아무리 반복해도 질리지 않았다. 

직장 생활할 때 매일 집에서 준비해갔던 아버지의 점심은 늘 볼라냐 샌드위치였다. 메뉴가 바뀐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같은 음식을 그렇게 오래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지 불가사의였다. 퇴근 후 바로 저녁식사를 하고 취미로 한 일도 저녁 테이블 그 자리에 앉아서 하는 포커카드 패떼기였는데 몇 시간은 쉬지 않고 했다. 그것도 매일.

그런 아버지가 당신이 살던 작은 타운하우스를 정리하고 성인 데이케어가 아래층에 있는 요양원에 들어갔다가 적응을 못하고 나오신 것은 뜻밖이었다. 그 후 내 집에서 몇 주 계시다가 그래도 세 자녀 중 직장에서 은퇴한 딸이 아버지를 돌보는 게 최적격이라 동생이 아버지를 모셔갔고 한 1주일 정도는 잘 계셨다. 

그러다가 아버지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바로 비행기 표를 구해 달려갔다. 열 몇 시간을 가서 뵌 아버지의 모습은 많이 변해있었다. 아버지를 매제와 함께 부축해 식탁에 앉혀 모시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소주를 두어 잔 같이 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잠자리에 드셨다. 나도 아버지 옆에 누워 아버지 손을 잡았다. 살은 다 빠졌지만 통뼈는 그대로였다. 그렇게 잠에 들었던 아버지 소식을 다시 들은 것은 내가 다음 날 밤샘 비행기로 돌아와서 일을 좀 보고 다시 하룻밤을 지낸 후 새벽이었다. 아버지가 떠셨다는 동생의 텍스트 메시지였다. 무려 55시간의 깊은 잠을 뒤로 하고 말이다.

메시지를 받자마자 바로 생각난 게 뉴욕에 사는 둘째 아들이었다. 보스턴에 사는 큰 애는 얼마 전 태어난 갓난애 때문에 꼼짝 못하지만 둘째는 할아버지를 뵙기 위해 그 날 아침에 비행기로 가기로 되어있었다. 둘째에게 연락하니 이미 고모로부터 소식을 들었단다. 그리고 자신은 비행기 표도 미처 취소 못한 채 나와 같이 있기 위해 지금 이미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중이라고 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과 속 깊은 둘째에 대한 고마움이 범벅됐다. 눈시울이 갑자기 뜨거웠다. 

[삶과 생각]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문일룡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애틀랜타 뉴스]  환율 1480월 돌파 원화만 유독 약세,  2026부동산 전망, K 푸드 미국이 1위 시장, 애틀랜타 한인 사회 동정까지 (영상)
[애틀랜타 뉴스] 환율 1480월 돌파 원화만 유독 약세, 2026부동산 전망, K 푸드 미국이 1위 시장, 애틀랜타 한인 사회 동정까지 (영상)

[애슨스 역주행 참사…한인 부부와 태아까지 숨져]애슨스에서 26세 운전자의 역주행 사고로 차량 3대가 연쇄 충돌하며, 마지막 차량에 타고 있던 한인 최순훈씨가 현장에서 숨지고 임신

아프리카계 최대 명절 '콴자(Kwanzaa)' 시작
아프리카계 최대 명절 '콴자(Kwanzaa)' 시작

전통과 공동체 의식 고취 축제'키나라' 촛대에 7개 촛불 밝혀 크리스마스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인 12월 26일부터 새해 첫날까지, 미국 전역과 애틀랜타 사회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스머나, 은퇴 후 살기 좋은 도시 GA '탑'
스머나, 은퇴 후 살기 좋은 도시 GA '탑'

유에스 뉴스 선정...잔스크릭 2위 스머나가 조지아에서 은퇴 후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됐다.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는 최근 조지아 전역 도시들을 대상으로 2025~26 은

[미주시문학을빛내고있는 10명의시인을찾아서10] 생선가게일기
[미주시문학을빛내고있는 10명의시인을찾아서10] 생선가게일기

윤영범 얼음 속, 줄지어 누워서로의 상처를 덮어주고 있었다넘은 파도 수만큼 돋아난비늘을 곱게 두르고어느 찬란한 바닷속에서사랑을 하고,이별을 하고방황을 했을 그 심해의수 온을기억하면

[행복한 아침]  준비하는 마음

김 정자(시인 수필가)                                새해를 앞둔 세밑이다. 옷 깃을 여미게 하는 차갑고 건조한 겨울 바람으로 하여 비움으로 곧추선 나 목

29~30일 '혼잡'...새해 전후는 '한산'
29~30일 '혼잡'...새해 전후는 '한산'

▪연말연시 조지아 교통량 전망   성탄절 이후 연말연시 기간 동안 모두 340만명 이상의 조지아 주민들이 자동차를 이용해 여행에 나설 것으로 전망됐다.전미자동차협회(AAA)는 26

귀넷CID 순찰대, 안전 지킴이 역할 '톡톡'
귀넷CID 순찰대, 안전 지킴이 역할 '톡톡'

'앰버서더'이름으로 다양한 활동순찰에 조명수리·간판철거까지사업주들 "우리 눈과 귀 역할" 연말연시를 맞아 귀넷 플레이스 커뮤니티 개선지구(CID)가 지역내 수천개에 달하는 사업체

조지아 주민 식료품 지출 비율 전국 6위
조지아 주민 식료품 지출 비율 전국 6위

소비 지출 7.5%, 총액 415억 달러 치솟는 물가 속에 조지아 주민들이 식료품 구입에 미국 내에서 6번째로 많은 돈을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최근 베스퍼 툴(Vesper T

겨울 실종 애틀랜타, 토요일 76도 예보
겨울 실종 애틀랜타, 토요일 76도 예보

내주 화, 수요일 영하권 예보 애틀랜타의 이번 주말 기온이 70도 중반까지 치솟으며 한겨울에 초봄 같은 날씨가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토요일은 역대 최고 기온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

연휴 교통사고 57건 중 7건 음주운전
연휴 교통사고 57건 중 7건 음주운전

이틀새 주 전역서 6명 사망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 당일 조지아 전역에서 교통사고로 모두 6명이 사망했다.26일 오전 조지아 공공안전국(GDPS) 발표에 따르면 24일부터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