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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학교 길 풍경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2-10 08:06:40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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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인생을 견디며 버티게 해 주는 것은 세월 속에 담아놓은 고운 추억과 어우러진 희망이다. 고운 추억은 아무리 매만져도 전혀 줄어들거나 닳지 않는다. 부산 구덕산 기슭 보수천을 끼고 있는 동 대신동은 머리에 서리가 내렸는데도 향기 어린 넉넉한 그리움으로 안겨온다. 태어나고 자라온 집은 수목이 우거지고 깊은 우물이 있고 널찍한 장독대와 마당이 넓은 이층 적산 가옥이었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향수를 불러들이고 안식을 안겨주지만 긴 이방 여정에서 향수는 명치 끝에 매달려있다. 유년 기억은 안개처럼 습하게 피어 오르다 슬그머니 사라지기도 하지만 여학교 교복을 입던 시절은 그리움이 조바심 치듯 흥건한 그리움 한 보퉁이 남겨두고 먼 이국으로 떠나와 있는 듯 하다. 구덕 산 초입 버스와 전차 종점은 그림엽서 속 풍경처럼 원색 선명한 기억의 장에 각인된 채 남아있다. 6.25 전란 후유증으로 남녀 중고등 학교들이 산기슭에 밀집되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침 등교 길에는 버스와 전차에서 쏟아놓은 학생들 행렬은 도도한 물결처럼 흘러갔다.

남녀 학생들이 뒤섞여 등교하는 학교 길엔 숱한 에피소드와 상큼한 낭만도 함께 숨쉬고 있었다. 쪽지 글을 접어 여학생 가방에 몰래 집어넣는 여드름 꽃이 핀 남학생, 서로 눈길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서로 어색해 하던 풋풋한 풍경들이 싱그러웠다. 짙은 녹음에 드리워진 청소년기 숲 내음 가득한 풍경에 화음이 되어 떠올려지는 유년기로 기억의 물줄기를 거슬러 가본다. 유년의 학교 길은 전란의 상처가 배경이 되어 있지만 부풀은 꽃씨처럼 눈부시게 빚어지고 있었다. 순박한 유년의 정원에서 꿈을 줍고 싶은 유랑자는 반백의 머리에도 새삼 유년의 꽃그늘이 그리워 연록 그리움이 꿈꾸듯 뒤척인다. 낮은 야산을 터 삼아 소나무 가지에 작은 칠판을 걸어두고선 비탈을 깎아 층계처럼 턱을 만들어 책가방을 무릎에 두고 책상을 삼았다. 

시국의 아픔을 일찍이 겪으며 자라온 세대였다. 하늘이 푸르고 맑은 날 학교길은 소풍길 같이 설레 였다. 학교라 이름하기엔 서글펐지만 산비탈을 거슬러 오르며 지천이던 들꽃이며 풀 냄새, 숲 내음에 젖어 산길을 오르내렸다. 밝고 환한 햇살로 가득한 노천 교실. 하루 내내 눈부신 빛살로 하여 포만감에 젖어 날개를 단 듯 했다.

고운 단풍을 책갈피마다 가득 가득 채우며 낙엽을 헤집고 다녔다. 곱게 물든 나뭇잎들이 꽃비되어 쏟아져 내리는 배움터도 스산한 바람결에 밀려 창고나 공장 빈터로 전전했다. 춥고 긴 겨울을 보내고 흙 바닥 위에 세운 얼기설기 엮인 가건물을 만나게 되었다. 황토 바닥에 엉성하고 조잡한 판자를 두르고 지붕은 군용 텐트를 씌운 그야말로 판자 교실이었다. 옹이가 떨어져 나간 부분으론 바깥이 훤히 내다보였다. 비오는 날이면 교실 바닥은 질척거렸고, 찬 흙바닥 냉기는 전란에 시달린 동심을 더욱 춥게 만들었다. 장사꾼 소리가 교실로 뛰어들고, 야채 썩어가는 내음이며 생선 비린내도, 엿장수 가위 소리랑 튀밥 튀기는 소리까지 습한 바람 결에 묻어왔다. 

세상 고단한 소리와 냄새 속에서도 동심은 자라고 있었다. 천진하고 꾸밈없이 맑은 유년을 보냈기에 여자 중학교 가교사에서 보낸 수채화 같은 행복하고 소중했던 시간까지 깊이 새겨둘 수 있는 추억으로 회상 될 수 있음도 더 없는 행운이리라.

역류할 수 없는 흐르는 시간의 섭리를 받아들이며 신이 예정해 두셨던 짝을 만나, 달빛같이 바람 같이 쉼없이 흐르는 시간과 동행하며 어느새 내 아이들은 물오른 초목처럼 싱그럽게 자라 주었고 어느 틈에 아이들의 등교길 안전을 위해 이른 아침 노란 깃대를 들고 건널목 학교길을 지켜주는 새내기 학부모가 되어있었다. 

학교 길 풍경은 시간의 여울과는 무관한 듯 생동과 낭만과 꿈이 역동하고 있다. 먼 바다 건너와 그리 오래지 않은 것 같은 세월은 사십여 년을 훌쩍 접어버렸다. 어린 딸들 손을 잡고 이방인의 길로 들어섰는데 어느 결에 일곱 손주를 둔 할머니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 손주들 학교 길 풍경은 스쿨 버스 등교길이라서 풍성하고 넉넉한 추억들이 크로스워드 퍼즐처럼 짜임새 있는 기억들로 새겨져 있을 것이다. 손주들에게도 먼 훗날 물안개 피듯 그리움이 피어오르는 학교길 풍경이 되어줄 것이다. 

스쿨 버스가 기다리는 곳까지 부모님 손을 잡고 새벽 산책길을 걸으며 맑은 새벽을 함께한 기억이며 스쿨버스에서 친구들과 재잘댔던 훈훈한 기억들까지 손주들이 다 자란 후에 까지 신선한 유년의 기억들로 간직되어 지기를 빌어본다.

 잊혀질 듯 간직된 아슴푸레한 학교 길에서 하얀 깃을 세우고 양 갈래로 머리묶은 아련한 동무들, 모두 투명한 듯 푸른빛 도는 추억의 여울목, 학교길에서 만났던 바람 결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창망한 이국 하늘 아래 학교 길 풍경을 떠올리는 노년의 아낙은 지는 햇살이 눈부시어 눈가에 물기가 어린다. 

속절없는 투명한 편린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학교 길 풍경에 잠겨 하염없이 바라보는 유년의 하늘 닮은 이국 하늘은 어찌 더 높고 춥기만 할까. 그리움도 붙들지 않으면 그냥 잊혀질까 그리움 발목을 잡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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