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에세이] '첫'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2-06 13:14:21

에세이,박인애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박인애(시인·수필가)

 

첫눈이다. 

창가에 서서 지붕과 거리에 쌓인 눈을 보고 있으려니 좋으면서도 심란하다. 27도라 해도 체감온도는 더 낮을 테니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극과 극, 감사함과 미안함이 교차한다. 윈터 스톰이 도시를 장악해 시민의 발목을 붙잡았다. 학교는 문을 닫았고 우리도 집에 갇혔다. 한데서 지내는 분들을 생각하면 황홀한 감옥이겠지만, 이틀째 매장을 못 연 남편은 쉬는 게 가시방석이다. 요즘 사업하는 지인 중 리커 스토어 하는 분 빼곤 매출이 줄어서 모두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날씨까지 안 받쳐주니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첫날은 텔레비전 리모컨을 이리저리 누르며 엉뚱한 데다 화풀이하던 남편이 오늘은 누그러졌다. 포기한 모양이다. 미리 장을 보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일기도 했지만, 나 또한 포기했다. 이참에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다 소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비우는 중이다. 특히 냉동실은 녹이기 귀찮아 안 해먹은 게 많아서 한 번쯤 그래야 했다. 뭘 그렇게 많이 쟁여놨는지 나도 놀랐다. 닥치면 안 될 것도 없고, 못 할 것도 없는 것 같다. 다 적응하고 살기 마련이다. 

나는 유독 ‘첫’이라는 관형사를 좋아한다. ‘첫’이 붙은 말들은 왠지 설렌다. 처음이어서, 첫 경험이어서 그렇다. 첫눈, 첫사랑, 첫차, 첫 여행, 첫 월급, 첫아기, 첫 키스….

물론 첫 교통사고처럼 기억하기 싫은 말도 있지만, 대부분은 좋다. 그 말에 얽힌 추억이 아름다우면 더더욱 그렇다. 

수필반 수강생들에게 첫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제목으로 글을 써오라고 과제를 내주었다. 각자가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추억이 소환되기를 바랐다. 일주일 후 첫 제자, 첫 집, 첫돌, 첫 만남 등 여러 작품이 탄생했다. 그 글을 쓰는 동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어느 날로 돌아가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추억을 회상하며 잠시나마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함께 나누는 우리도 덩달아 행복했다. 

지난 1월, 딸내미가 첫 소개팅을 했다. 두 아이를 가르쳤던 음악 선생님이 주선했다. 우리가 들은 상대방의 정보는 이러했다. 

“얼굴은 기대하지 마라, 키가 작다, 착하고 똑똑하고 진국이다, 여자 친구는 한 번도 안 사귀어 봤다, 대학 졸업하고 직장에 다닌다, 부모님도 너무 좋은 분이다.” 

외모보다는 인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남편과 딸을 존중해 만나 보라고 했다. 딸의 공식적인 첫 만남이 있던 날 우리는 오만가지 고민을 했다. 데이트는 딸이 나가는데 왜 우리 부부가 술렁거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할지, 화장은 어느 정도 해야 할지. 남자가 작다는데 신발은 뭘 신어야 할지, 음식은 어떤 걸 먹어야 할지… 처음이다 보니 기준이 없었다. 나가던 딸이 물었다. 

“근데 밥 먹고 돈은 누가 내는 거야? 더치페이하면 되나?”

“글쎄 한국에선 남자가 대부분 내는데 여긴 미국이니 따로 내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경험이 없어 모르겠다. 눈치껏 해.” 

겨울 방학 2주 동안 두 번 만나고 딸은 학교로 돌아갔다. 봄방학까지 못 볼 텐데 딱히 아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빡센 수업이 시작되자 딸은 정신이 없이 바빠졌고 그 와중에도 전화나 문자가 오면 친절하게 받아주었다. 그런데 한 사람은 텍사스, 한 사람은 마이애미에 있으니 만날 수도 없고, 수업 때문에 통화도 어렵고 이래저래 사회인과 학생의 만남은 뭔가 장애가 많았던 모양이다. 결국 둘은 한 달도 안 돼서 헤어졌다. 남자가 보냈다는 문자를 읽어보니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인이라 어른인 줄 알았는데 이기적이고 배려라고는 없어 보였다. 은근히 상처가 되었을까 봐 걱정되었는데 다행히 괜찮아 보였다. 나 같으면 이불 뒤집어쓰고 며칠 울었을 텐데 딸은 그런 면에서 쿨했다. 음악 선생님이 오히려 미안해했다. 자기가 그 애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던 것 같다며 다른 아이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딸내미는 공부에 방해돼서 안 되겠다며 남자친구는 졸업 후에 생각해 보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딸은 일상으로 돌아갔는데 우리 부부는 딸의 첫 이성 친구가 좋은 추억으로 남지 않은 것 같아 속이 상했다. 그까짓 소개팅 하나 망친 게 뭐 그리 대수일까 싶다가도 자꾸만 서운했다. 내색은 안 해도 얼마나 속상했을까 생각하니 다음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장 정리를 하다가 선반 위에 올려진 박스를 발견했다. ‘첫’이라는 이름이 붙은 딸의 물건이 든 상자다. 첫 배냇저고리, 첫 유치, 첫 발레복과 발레 슈즈, 첫 교복, 첫 한복, 첫 원피스, 첫 신발, 첫 양말… 앨범에도 첫들이 적혀 있었다. 처음 엄마라고 부른 날, 처음 뒤집은 날, 첫발을 뗀 날…. 모아 놓길 참 잘했다.

아무쪼록 내 딸이 살면서 만나게 될 모든 ‘첫’은 아름답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울러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안전하고 공의롭고 따뜻하고 평화롭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뼈 건강에 커피가 더 좋을까, 차가 더 좋을까?
뼈 건강에 커피가 더 좋을까, 차가 더 좋을까?

■ 워싱턴포스트 특약 건강·의학 리포트차를 많이 마시는 여성의 골밀도 더 높아커피 하루 5잔 이상은 뼈 건강에 부정적근력운동 하고 금연 및 음주 최소화해야 차와 커피 모두 다양한

[박영권의 CPA코너] One Big Beautiful Bill Act (OBBBA) - 새로운 세법 풀이 제19편 : 2026년부터 달라지는 비즈니스 식사 및 간식비 공제
[박영권의 CPA코너] One Big Beautiful Bill Act (OBBBA) - 새로운 세법 풀이 제19편 : 2026년부터 달라지는 비즈니스 식사 및 간식비 공제

박영권 공인회계사 CPA, MBA 2026년부터 사업상 발생되는 식사·간식비 세무 처리가 크게 달라진다. 즉 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 시행에 따

[법률칼럼] RFE가 왜 이렇게 많아졌나

케빈 김 법무사 2025년 이민국 심사 방식 변화, 실전 사례로 본 경고 신호최근 이민 신청자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은 “요즘은 RFE가 기본”이라는 하소연이다. 과장일까

[애틀랜타 뉴스]  환율 1480월 돌파 원화만 유독 약세,  2026부동산 전망, K 푸드 미국이 1위 시장, 애틀랜타 한인 사회 동정까지 (영상)
[애틀랜타 뉴스] 환율 1480월 돌파 원화만 유독 약세, 2026부동산 전망, K 푸드 미국이 1위 시장, 애틀랜타 한인 사회 동정까지 (영상)

[애슨스 역주행 참사…한인 부부와 태아까지 숨져]애슨스에서 26세 운전자의 역주행 사고로 차량 3대가 연쇄 충돌하며, 마지막 차량에 타고 있던 한인 최순훈씨가 현장에서 숨지고 임신

아프리카계 최대 명절 '콴자(Kwanzaa)' 시작
아프리카계 최대 명절 '콴자(Kwanzaa)' 시작

전통과 공동체 의식 고취 축제'키나라' 촛대에 7개 촛불 밝혀 크리스마스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인 12월 26일부터 새해 첫날까지, 미국 전역과 애틀랜타 사회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스머나, 은퇴 후 살기 좋은 도시 GA '탑'
스머나, 은퇴 후 살기 좋은 도시 GA '탑'

유에스 뉴스 선정...잔스크릭 2위 스머나가 조지아에서 은퇴 후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됐다.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는 최근 조지아 전역 도시들을 대상으로 2025~26 은

[미주시문학을빛내고있는 10명의시인을찾아서10] 생선가게일기
[미주시문학을빛내고있는 10명의시인을찾아서10] 생선가게일기

윤영범 얼음 속, 줄지어 누워서로의 상처를 덮어주고 있었다넘은 파도 수만큼 돋아난비늘을 곱게 두르고어느 찬란한 바닷속에서사랑을 하고,이별을 하고방황을 했을 그 심해의수 온을기억하면

[행복한 아침]  준비하는 마음

김 정자(시인 수필가)                                새해를 앞둔 세밑이다. 옷 깃을 여미게 하는 차갑고 건조한 겨울 바람으로 하여 비움으로 곧추선 나 목

29~30일 '혼잡'...새해 전후는 '한산'
29~30일 '혼잡'...새해 전후는 '한산'

▪연말연시 조지아 교통량 전망   성탄절 이후 연말연시 기간 동안 모두 340만명 이상의 조지아 주민들이 자동차를 이용해 여행에 나설 것으로 전망됐다.전미자동차협회(AAA)는 26

귀넷CID 순찰대, 안전 지킴이 역할 '톡톡'
귀넷CID 순찰대, 안전 지킴이 역할 '톡톡'

'앰버서더'이름으로 다양한 활동순찰에 조명수리·간판철거까지사업주들 "우리 눈과 귀 역할" 연말연시를 맞아 귀넷 플레이스 커뮤니티 개선지구(CID)가 지역내 수천개에 달하는 사업체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