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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시월 속으로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2-10-14 08:15:30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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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시월이다. 시월이 기웃기웃 긴가민가 다가서는가 했는데 미끄럼 타듯 시월 끄트머리가 바로 저 만치다. 일찌감치 고운 채색을 입어버린 잎새들이 가을 비를 만나 조락해버린 숲 길에 초록들이 햇살을 받느라 생기 롭게 들떠 있지만 젖어있는 나뭇잎 밝기가 연민의 별리처럼 애잔하다. 

외로움이 여며있는 숲길 또한 그리움이 배음처럼 잔잔히 흐르는 노년의 아낙과 하나가 된 듯 체념이 집약된 애절한 선율처럼 시월을 휘저어 놓으려 한다. 마치 오갈 데 없는 사람처럼 주머니에 찌른 손을 녹이고 싶어진다. 이미 숲길은 알고 있을 것 같다. 인간 장터에서 더 이상 허물어질 일이 없는 고목같은 노구에 사랑의 갈구가 더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란 것을. 하지만 허리 꺾인 고목을 바라보노라면 이상스레 상처는 상처 끼리 비벼야 새 살이 채워진다는 도리가 사랑의 끄나풀처럼 시린 마음을 용해시켜준다. 

숲길에서 만나지는 공허를 바라보며 한마디 위안을 애절하게 구걸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다. 노구의 절절한 추위와 허기를 간곡한 온기로 덧입혀 지길 기도 드리는 동안, 실어증이 되어 숲길을 더듬는 시간이 평화롭다. 가을은 치유의 계절이라는 울림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아직은 짙푸른 잎사귀 마다 설익은 가을을 이고 있지만 가을 기색은 그 낌새부터 다르다. 여름과 가을의 이음줄이 되어주는 계절 환승이 경이롭다. 가을은 다른 계절과는 달리 먼 하늘로부터 시작되고 구름에 실려오는 가을을 느끼기 시작하면 어느새 온몸으로 가을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하늘은 더할 수 없이 청정하고 서쪽에서 불어오는 하늬 바람과 남쪽에서 밀려든 마파람이 아무런 저항없이 갈바람이 들어서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 가을의 친구는 바람이 될 성 싶다. 철마다 찾아 드는 개성 강한 바람들이 마주 치며 서로를 연소시키곤 하지만 서로의 욕망 찌꺼기들을 탓하지 않고 친구 삼기로 하는 바람 삼각주가 짙은 동지애와 그리움을 부려 놓았기 때문인 것 같다. 가을은 흘러간 계절들이 남기고 간 봄의 설렘과 여름의 열정이 고여 있어 또 다른 추억이 잉태되는 계절이다. 가을 바람에 실려 그리움이 홀씨처럼 먼 하늘로 날리 운다. 열매를 거두어 들이고 곡간을 채워주고는 빈 손으로 떠나는 길손 마냥 인생들이 사색할 수 있는 시야를 열어주고 떠난다.

여름 내내 불볕 더위로 지낸 애틀랜타에도 가을 기운이 드리워지고 눈부신 하늘 빛이며 산 기슭을 타고 흐르는 물 소리에도, 아직은 남아있는 초록 위에도 서서히 가을 빛 결이 물들어 가고 있다. 가을 바람에 옷깃이 펄럭이는 것도 머리 결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도 마냥 유쾌하다. 계절의 전환을 흐름으로 느끼게 해주는 가을날 서정이 운율을 타고 조화롭게 가을 정취를 불러들인다. 계절 환승을 감각으로 절감할 수 있는 느낌이 살아 있음이요 행복이다. 계절의 순환을 바라다 볼수록 나이는 세어 무엇하랴 싶어진다, 이렇듯 시월 속에 안주하고 있으면 되는 것을. 머물러 있는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시월이 익어가면 숲 내음도 익어 가리라, 천지가 단풍으로 뒤덮이면 시월은 더 밝아지고 맑아지고 행복해질 것이다. 조지아에는 이미 북쪽에서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기에 단풍이 풍성하게 익어가면 단풍이 꽃처럼 터널을 이룬 단풍 탐방을 나서볼 참이다.

결실이 익어가는 들녘이며 숲이며 만상에 안식을 끼치기 위한 마침표를 정립시켜 주었다. 그 마침표 속에는 꿈이 있고 예찬이 숨겨져 있는 멋과 낭만을 높고 푸른 하늘이 그려내고 있다. 가을 하늘을 우러르고 있노라면 낮은 곳을 마음을 두라는 눈짓이 상큼하게 마음에 들어선다. 투명한 하늘이 유리잔이 부딪히는 소리를 낼 것만 같다. 고아한 정취와 서정이 담긴 가을 바람의 수다가 더 없이 좋은 시월이다. 하늘은 자꾸만 높아져가고 대지에서도 숲에서도 달달한 단내가 난다. 시가 있고 서정적이고 목가적이면서 몽환적인 탐닉 낭비를 아끼지 않게 만든다. 누구나 시인이 되고 로망이 있는 환상적 낭만주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떠나온 곳으로 한 번 쯤은 가보고 싶어지는 귀소본능이 재발하는 시점이다. 만나고 싶고, 보고 싶은,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까지 생각난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고, 멋진 추억 만들기를 꿈꾸게 되고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도 나무람이 없을 것 같은 시월이다. 해서 인생도 시월이 되면 자기애가 깊어지나 보다. 자기애의 본성에는 회한이 도사리고 있어 그리움 농도가 짙어지고 존재감에 대한 사색도 깊어진다. 

시월을 알아 간다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 가을 또한 누구라서 독점하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계절이다. 행복도 매 한가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것으로 행복을 누릴 그릇이 준비된 자는 넘치도록 누릴 수 있는 것. 시월도 가을도 누릴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된 자만이 넘치도록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색감 예쁜 감성이 손짓하는 시월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원격 동화의 특질을 이루어 가며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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