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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할머니 야상곡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1-09-24 09:42:37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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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나이가 깊어간다는 증표처럼 주변에 편찮으신 분들이 늘어난다. 건강 프로그램에서만 다루던 병명들이 주변 친지들의 몸에서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래 할머니들이 만나면 건강 이야기가 변함없이 대두된다. 그럴 때마다 치매 만은 피해야 한다고들 이구동성이다. 스스로를 놓아버린 황폐한 모습으로 남은 날들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거니와 자녀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철부지심 다짐들을 하게된다.

야상곡은 주로 밤에 영감을 받은 악곡의 장르로 중세시대 때는 아침 예배에 쓰였던 곡이다. 야상곡과 할머니는 어찌보면 어울리지 않는 말같지만 밤마다 야상곡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늦은 밤인데 전화벨이 울린다. 너무 오랜만에 전화를 드려서 죄송하다는 인사를 시작으로 어제 함께 나눈 대화랑 같은 흐름으로 얘기를 이어가신다. 오랜만에 받은 전화처럼 주거니 받거니 한참을 얘기를 나누고 전화를 놓았다. 이렇듯 할머니 야상곡이 연주되면서 차츰 얘기거리가 불어나 젊은 날 남편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시작된 긴 여정의 실타래가 풀려나고 아이들 성장과정들이 스치듯 지나가기도 하면서 실망과 아픔은 물론 보람되고 기뻤던 일,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달려왔는지 구비구비 전래동화집 같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어질고 성품이 단정하셨고 텃밭에 채소가 자라기 시작하면 채소 봉지를 나르시느라 분주하셨던 정이 많으신 분이셨다. 어느 순간 언니라는 부름으로 바뀌고 있지만 호칭에 연연치 않으며 하냥 평소처럼 대화 상자를 열어가는 일에 보탬이 되려 한다.

수취인 불명의 대화를 하고 계실 때도 있다. 다양한 수취인을 향한 대화를 곁에서 들을 수 있는 대화의 하모니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대화의 양상과 스토리는 금이 간 레코드판처럼 반복된다. 눈빛을 보면 촛점이 없어져가고 삶이 지워져가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 머릿 속에 저장된 메모리가 바로 한 인간의 존재성이다. 하나씩 하나씩 서서히 지워진다면 삶의 존재가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누군가 몰래 귀중품에 손을 댔다거나 집기들을 옮겨놓는다는 하소연도 곁들여진다. 딸이 자신의 지갑을 숨기려 한다는 의심의 혼선에 빠져들고 군데군데 잘려나간 기억들이 속절없이 사람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에 손에 쥐가 나듯 전화기를 떨어뜨리는 일이 잦아진다.

다행인 것은 어쩔 수 없이 인생을 놓아버릴 수 밖에 없는 고통을 고통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에 고통은 더 이상의 고통이 아닐 것이라는 새로운 시선으로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고통을 고통 아닌 잊음으로 다룰 수 있음이라서 경험해보지 못한 경지에서 새로운 신비의 문을 열고 들어서신 것으로 생각을 바꾼다면 가족들에게도 작은 위안이 되어줄 수 있는 건 분명하지만 가족들의 고통과 황망한 아픔은 예상밖의 모순이 되어  또렷한 현실로 다가와있다. 안타까운 폐해요 아이러니이다. 자아 발견은 퇴화해 가고 있지만 지워져버린 기억의 행간 사이에 자리잡은 몰입의 여행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딘지 모를 낯선 방황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설레임 만을 안고 아무런 계획 없는 표류기를 쓰고 있는 건 아닐런지. 능숙한 터치로 고단했던 삶을 힐링하고 있지는 아닐런지. 편향과 이탈을 번복하는 흔적들이 안타깝다.

같은 내용의 말을 두어번 이상을 번복하고도 기억을 하지 못하시는 분들의 신호를 나이탓으로 돌리고 흔히 다반사로 일어나는 건망증으로 여기며 둔감하게 대하기 십상이나 오히려 주의깊게 본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가족들이 눈치채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조기 발견이 더이상의 진행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는 것이기에 나이드신 분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일은 얼마든지 권장해도 무리는 없을듯 하다.

자신의 말을 경청해주는 가족, 친지와 어울리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뇌의 용적과 인지 능력을 키워갈 수 있기에 주변의 아낌없는 시선들이 모아졌으면 한다. 따뜻한 온기의 시선이 모아지면 선함과 진실의 진액이 풀려나면서 망각으로 잊혀져가는 기억들을 매듭으로 묶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따뜻하게 나누는 미담은 선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어떠한 아픔도 위로할 수 있음이요 감싸줄 수 있는 것이기에. 나누고 싶은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대상이 있을 땐 치매 진행의 예후와 뇌건강에 도움이 된다했기에 최선껏 대화에 집중하며 공감대를 만들어가며 하시고 싶은 얘기들을 들어드리려 하지만 최근엔 이마저도 가족들의 만류였는지 두절되고 있음이라서 할머니 야상곡이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져가기를 기대해본다. 계절이 접목되고 있는 가을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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