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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풍찬노숙(風餐露宿)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1-09-10 09:53:10

행복한 아침, 김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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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아침 나절 짧은 단상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노을이 비끼는 도심 거리에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남루한 노숙인이 손을 내민다. 풍찬노숙으로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한데서 먹고 자는 거처가 정한데 없는 지친 뒷모습이 이따금씩 재생되듯 떠오른다. 자정 무렵 공포스런 천둥 번개와 거센 비바람이 창을 마구 흔들어댄다. 비바람 몰아치는 거리에 카트 가득 짐을 실은 그 노숙인은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를 어떻게 피하고 있을까. 듣기로는 홈리스가 쓰러져 있더라도 직접 손을 대거나 도와주려 하지말고 혹여 누명을 쓸 수도 있음을 대비해 경찰에 연결해야 한다고 했지만 태어났으니 살아야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란 아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진다. 생존 위기상황 앞에 오로지 한줌 떡덩이가 절실한 방랑자처럼 억센 비바람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풀포기의 가녀린 삶을 들여다 보는 것 같다. 딸내들은 홈리스 만남을 대비해서 현금 나눔 대신 음료수나 먹거리를 항시 싣고 다닌다. 딸내들 흉내내기는 힘들지만 우리 집 할배는 별다른 손질없이 손쉽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를 두어끼 정도 먹거리로 건네시곤 하신다. 견딜 수 없는 굶주림이 한가닥 자존심도 수치심도 실종시킨 것 같다. 표정을 잃은 지도 오랜 것 같고 감사도 감동도 기쁨도 어디로 잦아들었는지 무표정 일관이다. 푸른하늘이 지붕이요 몸을 누일만한 박스 조각만 있으면 아늑한 잠자리가 되는 무소유의 경지를 걷고 있을 듯 싶다. 어쩌면 시공을 무시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며 자연과의 조화 만을 꿈처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 이상 낮출게 없는 텅빈 육신을 끌고다니며 세상 잣대로 눈금을 맞출 수 없는 디오게네스 철학이 숨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을 밀어내고 당김질을 해대며 온갖 광기와 감정을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을 화학실험하듯 전기 분해하듯 즐기고 있을 것도 같다. 생의 젊음과 소멸을 뒷풀이하듯 토막도 치고 붙이기도 하면서. 생의 마디 마디 봄이 찾아들고 봄은 여름을 불러들이고 여름은 가을에게 계절을 떠맡기고 가을은 겨울로 스며들듯 바람처럼 구름처럼 생을 지나치고 있는 듯 싶다.

둥지 잃은 서글픔은 밤이 찾아오는 두려움으로 이어지고 허기 앞에 무너진 일상은 노숙자 쉘터를 찾고 무료 급식소를 찾게된다. 신문지로 얼굴을 가리고 다시 시작할 때까지 더는 주저앉지 말자고, 정처없이 음지로 음지로 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희망이 바닥에 나뒹굴고 절망의 밤을 저당 잡힐 수 있기를 몸부림하며 새벽을 깨웠을 것이다. 이렇듯 밤을 밝히다 보면 새벽을 깨우는 발걸음들이 부러워진다. 갈 곳이 있는,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는 일상의 저렴한 기대치 조차도 말라버렸을까. 같은 하늘 아래 가진 자의 눈높이가 절대성이라 우기는 소리와 오늘은 어디메서 무료급식을 나누어 준다는 소리가 뒤엉키는 세상이 소란스럽기만 하다.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생존의 고뇌를 맛본 탓에 그나마 달관의 경지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위로가 힘이 되어 주었을까. 홀로 무엇을 어떻게 딛고 일어설 수 있을까. 새들도 외홀로는 날지 않음이라 우리가 살고갈 한 생은 어딘가에 기댈 벽이 있기 마련인 것인데 손을 붙들만한, 내밀어주는 손길이 주변에 정녕 없었을까. 시대를 막론하고 노숙인은 어디든 있어왔기에 어쩌면 노숙인이란 세상이 만든 눈높이보다 더 높은 차원의 영혼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함을 누릴 수 있다는 방만함의 시선에는 욕망의 갈증에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의 허기, 비굴의 굴레쓰기를 밥먹듯하는 인생들을 지켜보며 한끼 허기를 채우기만 하면 왕좌도 부럽지않음이라서 순수의 정직을 구별할줄 모르는 인생들의 편견을 비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끝없는 정욕을 쫓아 정신적 영혼의 걸인이 되어 지식, 권력, 권좌의 쓰레기통을 뒤적거리고 있는 뻔뻔한 지식과 권력의 노숙인들이 양산되고 있는 세상을 비스듬히 비켜서서 지켜보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풍요의 시대라지만 어쩌면 영혼의 홈리스들이 양산되고 있는건 아닐런지. 오로지 권력과 물질을 생의 목표로 삼는 세상이란 생존경쟁의 전쟁터에 영혼의 노숙인들이 비일비재 지천인 것 같아 인생이란 어차피 풍천노숙의 삶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끝모를 욕심에 사로잡힌 일그러진 인생들끼리 영혼의 걸인으로 의기투합 야합하느라 세상은 혼란의 무법천지로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다. 노숙인이 힘들어 하는 것은 ‘다 괜찮다' 고 스스로를 속일 수는 있지만 가장 힘든 건 객관적 편견의 시선이라 한다. 과연 이 시대에 세상이 만든 잣대에 매이지 않으며 영혼의 자유를 누리는 참 자유인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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