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작고 가벼운 소형 해치백. 한 번 충전해 최대한 많이 달릴 수 있는 게 경쟁력이기 때문에 자동차 업체들이 선택한 형태이다. 전기차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쉐보레 ‘볼트’가 대표적이다. 이제는 기존 자동차 업체와 완전히 다른 테슬라가 이와 같은 고정 관념을 일부 깨고 있지만 여전히 전기차는 실용성을 기반으로 한다. 테슬라의 상위 모델인 ‘모델S’나 ‘모델X’를 보면 뛰어난 성능을 바탕으로 한 첨단 기술의 결정체이지만 디자인부터 고급스럽다는 느낌은 잘 들지 않는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첫 전기차 G80 전동화 모델(G80)은 태생적인 럭셔리함을 바탕으로 실용성에 갇힌 전기차의 상식을 부수는 차다. 국내 대표 고급 세단의 파생 모델인 만큼 전기차 이상의 감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외관은 전장 4,995㎜, 전폭 1,925㎜, 전고 1,465㎜에 완만하게 떨어지는 루프 라인까지 기존 G80 세단과 같다. 다만 전면 그릴이 전기차 전용 G-매트릭스 패턴이 적용돼 차별화된 지점이 있다. 그릴 상단에 위치한 충전구는 닫았을 때는 경계가 드러나지 않도록 디자인 됐다. 실내로 들어가면 친환경 소재가 대거 적용된 점이 눈에 띈다. 시트와 콘솔, 암레스트(팔걸이)에 천연 염료를 사용한 가죽을 적용했는데 부드러운 촉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기존 가솔린 모델에서 우드가 적용됐던 대시보드 하단 라인과 센터 라인에 적용된 친환경 원목 장식 디자인은 전기차로 럭셔리함을 배가 시켰다.
고급차로서 더 중요한 것은 주행 성능일 것이다. 경기 하남 스타필드에서 가평 마이다스 호텔까지 왕복 약 70㎞ 구간을 달렸다. 내연기관 차와 달리 시동이 아닌 전원 버튼을 누르자 전기차 특유의 고요함이 전해졌다. 가속 페달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묵직함으로 안정적인 주행감이 전해졌고 스티어링휠 조작감도 가볍지 않아 고급 세단다운 핸들링을 느낄 수 있었다. 가속감은 내연기관차를 압도하는 수준이었으며 여기에 풍절음이나 노면 소음도 철저하게 잡아줘 프리미엄 세단다운 품격을 보여줬다.
G80 전기차에는 최고출력 136㎾, 최대 토크 350Nm짜리 전기모터가 전륜과 후륜에 각각 들어간다. 평시에는 하나만 구동되던 모터가 스포츠 모드로 전환하거나 경사를 오르느라 많은 힘이 필요할 때 모두 구동된다. 모터 두 개의 합산 최고출력은 272㎾(약 370마력)로 제로백이 4.9초로 스포츠 세단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아 운전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럭셔리카 답게 승차감도 뛰어난 수준이다. 일반 도로에서는 물론이고 고속도로 구간에서도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한 느낌을 줬다. 대형 세단답게 뒷좌석 공간도 넓고 헤드 룸 공간도 충분해 VIP가 타는 고급 세단의 기능도 수행할 수 있다.
특히 G80의 정숙성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내연기관차는 특유의 엔진 소리로 웬만한 풍절음이나 노면소음을 잡아줄 수 있지만 엔진 대신 전기모터가 조용히 돌아가는 전기차일 수록 소음을 잡기가 더 어려운데 G80은 고속주행에서도 모터음은 물론이고 풍절음이나 하부소음이 거의 없었다. 전기차는 가속페달을 발에서 뗄 경우 회생제동장치가 작동하면서 특유의 ‘윙’하는 소음이 발생하는데 이마저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제네시스 측은 브랜드 최고 수준의 정숙성 확보를 위해 능동형 소음 제어 기술인 ‘ANC-R’을 적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해당 기술은 4개의 센서와 6개의 마이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노면소음을 측정·분석함과 동시에 반대 위상의 소리를 스피커로 송출해 소음을 줄이게 한다. 다만 옥에 티가 있다면 스포츠 모드에서 운전할 때도 고도의 정숙성이 유지돼 고속 주행 때 스포츠 세단 특유의 팝콘 소리가 그립다는 생각은 들었다.
럭셔리 전기차로서 G80의 단점을 굳이 뽑자면 가격이 될 것이다. G80 전기차 판매 가격은 전기차 세제혜택 후 8,281만원(개별소비세 3.5% 기준)이다. 여기에 몇 가지 옵션을 더하면 9,000만원을 훌쩍 넘어 1억 원에 달할 것이다. 전기차의 경우 차량 가격이 6,000만 원을 넘으면 보조금을 전액 받을 수 없고 50%만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럭셔리 전기차를 타고 싶어하는 상류층 고객들 입장에서는 보조금 걱정 없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일 수 있다.
<이경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