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국에서 목회 할 때 몸이 좀 좋지 않아서 기도원에 들어 간 적이 있습니다. 이 소식을 어느 여 전도사님이 들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분이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 “주의 종이 아프시다니요. 웬 일이예요” 목사님이 말 못할 죄를 지은 것이 틀림이 없어요, 하고 어떤 분에게 단정지어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간접적으로 제 귀에 들려 왔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이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대꾸를 했지만 얼마나 제 마음이 무거웠는지 모릅니다.
그분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잘못 판단하면 안됩니다. 어떤 실패한 형제에게 찿아 가서 이렇게 말한다고 가정을 해 보세요. “당신이 이렇게 실패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어요. 무슨 잘못을 범했는지 생각해 보세요. 지은 죄를 솔직하게 고백해야 문제가 풀립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에 죄 안 짓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털면 다 먼지 나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 입니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곤경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잘못된 교훈을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욥처럼 어려움을 당 할 수 있습니다. 에수 잘 믿어도 병들 수 있고. 재산이 날아갈 수도 있고. 고통을 당할 수도 있고, 모함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엔 일찍 세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 믿음까지 팔아먹는 어리석은 짓을 안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여기에 어떤 유능한 비행기 조종사가 있다고 합시다. 그가 자기의 비행 경력과 탁월한 조종술을 내세우며 “내가 조종하는 비행기는 절대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하고 큰 소리를 친다면 당신은 그의 말을 수긍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비행 교육을 받고, 아무리 자랑 할 만한 비행 경력을 가졌다 해도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법은 없습니다. 비행기를 몰고 창공을 나는 한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조종사는 항상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개연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조종사가 왜 많은 시간을 바쳐 가며 비행 교육을 받고 훈련을 합니까? 안전 운항을 위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객기에 몸을 실으면 원하든 말든 반드시 들어야 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여승무원이 나와서 몇 가지 안전 수칙을 가르쳐 줍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산소 마스크는 어디에 있고. 구명대는 어떻게 매야 하는지 등을 승객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그 행동 지침을 귀담아 듣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까 하는 식으로 받아 넘기는 것입니다. “나는 기도를 많이 했으니 사고가 나지 않아. 괜잖아. 하며 승무원의 말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만약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생각이 옳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도 마찬가지 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들 처럼 살아야 합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항상 깨어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