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알고 보니 참 좋은 분이네요.”
몇 달 전에 알게 된 지인이 어느 날 대화 중에 툭 던진 말이었다.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말만 믿고서 그동안 나를 잘못 알고 있었다는 고백이었다. 그 ‘누군가’ 가 누구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언뜻 뇌리를 스치는 얼굴이 있었다.
어느 날 카페에 들어서면서 여럿이 담소하는 자리를 지나친 적이 있다, 그 중에 잘 아는 얼굴이 있어 서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는데, 순식간에 좌중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왜들 저러지?” 그 상황이 하도 이상해서 한동안 의아했던 적이 있다. 예감은 적중했다. 그 ‘누군가’는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내가 믿었던 사람이 내 뒤에서 험담한 것을 알고 나니 한동안 마음이 암울했다. 혹여 남에게 나의 진정성을 보이지 못한 것이 어쩌면 내 불찰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그 까닭을 알아내고 싶었다. 인생지사에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스스로 다독이려 했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기분이 언짢았다. 여전히 내 앞에서 보여주는 그 미소가 가면이라는 생각에 마주칠 때마다 생기는 불신감은 바늘처럼 가슴에 박혔고, 결국 그와의 인연을 더는 이어갈 수 없었다.
인간관계에서 낭패감을 경험할 때면 늘 떠올리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오래전 TV 프로에서 보았던 어느 부부의 영화 같은 실화다. 평화롭던 외갓집, 잠자던 할머니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둠 속에서 범인을 언뜻 보았다는 어린 손녀가 이모부 테드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테드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알리바이를 증명할 방도가 없었다. 세상 모두가 그를 살인자라 믿을 때, 유일하게 그의 무고함을 믿어준 사람은 아내 메리뿐이었다.
메리는 진범을 밝히기 위해 사립탐정 공부를 시작했다. 자격증을 따고 사건 현장을 샅샅이 뒤진 끝에, 사건 당시 근처에 살았던 아동 성범죄 전과자를 진범으로 의심하게 된다. 추적 끝에 그가 현재는 다른 죄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는데, 기묘하게도 그곳은 남편 테드가 복역 중인 곳이었다. 메리는 남편을 통해 그 남자의 담배꽁초를 입수했고, DNA 검사 결과 그것은 8년 전 사건 현장의 증거물과 정확히 일치했다. 한 사람의 굳건한 믿음이 8년 만에 진실을 건져 올린 기적이었다.
심리학자 브레네이 브라운은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누군가를 완전히 믿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맞다. 누군가를 향한 나의 믿음은 상대가 완벽한 사람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비롯되는 나의 결정이다. 남의 마음 속 믿음을 내가 어찌할 도리는 없겠다는 마음에서 그에게서 등을 돌리기로 했다.
등 돌린 인연에서 얻은 교훈 덕분에 오히려 내 곁을 지키는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이 선명하게 보인다. 내 믿음 안에 머물러준 그들 덕분에 나는 외롭지 않았고 고단한 일상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 곁에서 소리 없는 믿음을 주는 이들, 내 삶에 든든한 바람벽이 되어주는 가족과 어려운 일을 제 일처럼 걱정해 주는 오랜 벗들, 그들은 내가 외로움에 함몰되지 않게 붙잡아주는 닻 같은 존재들이다.
살다 보면 오해나 차가운 시선을 마주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그들의 몫이고, 내가 누구를 믿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는 온전히 나의 선택이다. 억울한 누명을 쓴 남편을 끝까지 지켜낸 메리의 믿음처럼, 나 또한 내 곁의 소중한 이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되고 싶다.
훗날 누군가 나를 떠올렸을 때 '참 믿음직한 뿌리 같은 사람'이었다고 기억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내 마음의 결을 정성껏 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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