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사랑의 어머니회 수필교실)
지난 청룡 영화제 시상식 무대에서 화사가 ‘Good Goodbye’를 부르는 장면을 보았다. 난생 처음 음원을 찾아 수 십 번 반복해 들었다. ‘Good Goodbye’ 좋은 안녕이라는 제목에 마음이 끌렸다. 기사 중 “안녕은 우릴 아프게 하지만 우아할거야. 땅을치고 후회해도 좋아. 우리 이렇게 Goodbye”라는 소절이 마음 깊숙이 파고 들었다. ‘땅을 치고 후회해도 좋아’ 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아주 좋은 것을 놓치게 되면 정말 후회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나는 나쁜 것을 놓는 데도 후회했었다. 버리지 못한 나의 지난 30년이었다. 결혼하고 낯선 이민생활이 시작되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도 힘들었지만, 한국에서의 학력과 경력은 헌신짝이 되어버렸다. 친정식구 하나 없는 타지에서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미국에 오자마자 세탁소를 시작으로 빌딩 청소든 힘든 일들을 가리지 않았다. 생활능력이 없던 남편의 몫까지 감당해도 시집식구들의 비난은 나에게 쏟아졌다. 딸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남편 때문에, 두 딸이 태어난 후에는 자식을 위한 희생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고생을 모르고 살았었기에 남몰래 참 많이도 울었다.
그러던 중 내 몸에 암이 생겼다. 초등학생인 두 딸이 눈에 밟혔다. 한창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였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을 멀리했다. 아빠와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생각에 마치 죽은 듯 살았다. 남편은 수술 후 퇴원하는 날 병원에왔고, 암 진단부터 치료가 끝날 때 까지 한번의 위로나 동행도 없었다. 오히려 재수없다며 타박했지만 나는 갈 곳이 없었다. 5 년 내에 죽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내 존재를 스스로 지우면서 세상과 멀어지고 있었다.
혼이 빠져 버린 삶이었다. 작은 딸이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폭력적인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후회가 걷잡을 수없이 밀려왔다. 젊은 시절 열정 가득했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늙고 지친 몸만 남아 있었다. 젊은시절로 되돌아 갈수도,그렇다고 해서 이 상태로 삶을 이어갈 자신도 없었다. 암담한 현실 앞에 몇 년간 우울증의 긴 터널을 힘들게 지나야했다. 그러고 나니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했던 것, 하고 싶었던 것, 잘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화사의 노래 가사처럼 “안녕은 우릴 아프게 하지만 우아할 거야”라고 되뇌었다. 아팠던 30년 세월과 이별하고, 아이들은 직장 찾아 떠나고 지금 내 곁엔 오직 나만 남았다. 우아하게 늙고 싶은데, 이 나이에 우아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 대학에서 전공한 그림을 다시 그리기로 했다. 이민 올 때 아끼던 붓 한 자루를 가져와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었다. 오랜 세월 묵히다보니, 붓털에 좀이 슬어 부스러져 있었다.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편안한 마음으로 운전할 때 스치는 풍경을 보면서 마음에다 그림을 담는다. 그리곤 나만의 공간인 내 집에서 붓을 들어 화폭에 그림을 그린다.
“GoodGoodbye”의 노랫말이 그렇게 가슴에 파고든 까닭은 후회스러운 지난 시간과 이별하고 찾은 행복 때문인 듯하다. 땅을 치고 후회할 만큼 아픈 과거였지만, 안녕은 나를 우아하게 만들었다. 다시 붓을 잡기가 두렵고 망설여졌지만, 그림을 그리려는 마음은 나를 지탱해주었다. 이제 나는 이민 와서 걸어보지 못한 길 위에 서있다. 지나간 아픔도, 후회조차도 우아하게 Good Good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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