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일상이 꼬여 지루해질 때면 나는 작은 일탈을 시도한다. 일탈이라 해야 말만 그럴듯할 뿐, 고작해야 매일 이용하는 고속도로를 버리고 간선도로 사잇길을 혼자 달리는 것이다. 시간을 조금 더 소모하는 수고를 감수하더라도, 자연 지형에 따라 구불구불 휘어진 로컬 길을 달리고 나면 굳었던 생각이 슬며시 방향을 찾는다. 순하게 늘어선 가로수들을 스치듯 달릴 때는 느슨해진 실타래처럼 마음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빨간 신호등 앞에서 차를 멈춘다. 이전 같으면 핸들을 움켜쥐고 초조했을 테지만, 이제는 ‘멈춤의 여백’을 즐긴다. 보통은 하늘에 뜬 구름의 흐름을 바라다보지만, 길가 샤핑 몰 입간판이 보이면 내용을 세밀하게 읽어본다. 그 덕분에 내 머릿속에는 지역 안내서 같은 지도가 들어있다. 지인들에게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정확히 알려줄 수 있을 만큼 로컬 길에 익숙해졌다.
시시한 듯해도 천천히 스며드는 만족감 때문에 사잇길을 달리는 것이 어느새 내 취미가 되었다. 사잇길을 혼자 달리는 것은 단순히 일상에서 여유를 즐기려는 행위가 아니다. 이는 일상의 속도에서 벗어나려는 나의 저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연히 눈에 띈 멋진 이름의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으로 에너지를 채우거나,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공원을 산책하며 마음을 식히는 ‘덤’도 얻는다. 이런 뜻밖의 여유로움은 산문적인 삶을 넘어서 일탈을 즐겼다는 착각에 만족감을 느끼게도 한다.
며칠 전, 지인들과 점심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던 참이었다. 여럿이 긴 시간 웃고 떠든 탓인지 운전석에 앉자마자 피곤이 밀려왔다. ‘이제야 혼자만의 시간이구나’ 안도감보다는 묘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왜 이러지? 왁자지껄한 소통 뒤에 찾아온 공허함 때문일까? 나는 남들과 온전하게 연결될 수 없는 사람인가? 인생의 끝자락에서 공허와 덧없음을 껴안고 사는 노인들과 함께 사느라 나도 모르게 '고독함'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혼자 웃었다.
고속도로 대신 로컬 길로 마음을 정했다. 빨간불에 차를 멈추고 옆을 보니, 공원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친구와 함께 걸었던 숲길이 떠올랐다. 공원 입구로 차를 돌렸다. 늦은 오후, 인적 없는 공원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잎 마른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온 바람이 목덜미를 스쳤다. 자연의 정적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의 연동 작용, 발이 이끄는 대로 타박타박 걸음을 옮기는 동안, 마치 나는 고독과 마주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친구들을 만나고 지인들과 소통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있을 때 나를 채워주는 편안한 고독감이 더 좋은 까닭은 무엇일까. 오래전 황동규 시인의 '홀로움'이라는 시를 읽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외로움이나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선 ‘홀로움’, 영혼의 더 깊은 충만함을 의미하려는 시인의 마음이 단박에 전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설렜었다.
황동규 시인의 시 '홀로움' 전문이다: 시작이 있을 뿐 끝이 없는 것을 꿈이라 불렀던가? 작은 강물 언제 바다에 닿았는지/ 저녁 안개 걷히고 그냥 빈 뻘/ 물새들의 형체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리는 끝이 따로 없는/ 누군가 조용히 풍경 속으로 들어온다/ 하늘가에 별이 하나 돋는다/ 별이 말하기 시작했다
황동규 시인은 '홀로움'을 '환해진 외로움'이라 했었다. 맞다. 친구들과의 나눔과 소통이 삶의 활기라면, 결국 나를 채우는 것은 이 '홀로움'의 깊이일 것이다. 느려진 삶으로 이탈했던 일상의 궤도로 돌아가는 혼자만의 오붓함, 사잇길을 달리며 얻는 시간적 여유, 잠시 멈춰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의 정적, 공원 산책로를 걷는 걸음에 얹히는 생각들. 일상의 틈에서 내 삶의 속도를 되찾는 이 모든 순간들이 바로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의 하루를 완성하는 과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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