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사람의 기억력이 컴퓨터처럼 리셋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성 치매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실제로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치매 환자들은 삶의 소중한 기억과 정체성을 잃고, 인격이 피폐해져, 결국 일상생활에 무능력함으로 주위를 힘들게 하는 모습으로 비치곤 했다.
그러나 치매에 대한 나의 편견을 버리게 했던 분이 있었다. 내 나이 삼십대 후반 다른 지역에 살 때 처음 알게 됐던 최창욱 목사님이다. 그 당시 미국 장로교단 소속이었던 우리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해결사 역할로 오셔서 몇 번 설교하신 적이 있었다. 처음 설교를 듣고 나서 나는 목사님의 팬이 되었다. 그 후 설교를 들을 때면 어쩌면 내 생애에서 존경할 수 있는 유일한 목사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느 날 한 여성이 양로원 입소 상담 전화를 했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환자였다. 내용을 듣던 중, 혹시 최 목사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혹시 환자가 목사님이셨나요?” 예상대로였다. 놀라움보다 마음이 저렸다. “한 번 뵐 수 있을까요?” 한 시간이 지나서 가족과 함께 오셨다. 물론 목사님은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날부터 살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스무 해가 지나서 구십 세의 치매 노인과 중년을 넘긴 양로원 원장으로 다시 만났다.
목사님의 치매는 예상보다 훨씬 더 깊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병이었기에, 그저 돌아가시기 전까지 인간의 위엄만은 지키게 하고 싶었다. 성직자이자 인간으로서 그분이 살아온 세월을 존중하고, 남은 생을 세상의 냉소로부터 떨어져 평화롭게 마치도록 돕는 것이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증 치매환자 임에도 불구하고 상황의 맥락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그분의 모습은 나의 편견을 산산이 부쉈다.
아이큐가 150이 넘었었다는 목사님은 지극히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놀라운 재치를 발하곤 했다. 식사기도 때마다 기도를 끝내려는 듯 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서너 번씩 같은 내용이 반복되곤 했다. 건망증이 만들어내는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밥상 위 국은 식어가고 다른 분들의 빈속이 기도를 끝냈으면 하는 시점을 자꾸 넘기면 내가 “아멘!” 하고 속삭였다. 목사님은 알겠다는 듯 “주님의 이름으로…….” 즉시 기도를 마무리하셨다. 상황의 흐름에 대처하는 그분의 순발력과 지혜는 그 상태의 치매 환자로서는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최 목사님의 유머 감각은 늘 웃음꽃을 피우게 했다. 1분 전에 먹고 돌아선 메뉴도 기억 못 하는 것을 알면서도 지인들과 외출하고 돌아오시면 나는 “목사님, 오늘 밖에서 뭐 드셨어요?”하고 일부러 물었다. 목사님은 잠시 눈을 깜빡이다 씩 웃으시며 “네가 알아맞혀 봐” 하고 되받으셨다. 중증 치매 환자로서는 쉽지 않은 임기응변의 대답이었다. 평생 남들과 유머를 나누고 상대를 배려하며 살아온 한 인격체였기에 가능했던 습관적이고 자동적인 반응 아니었을까?
기억의 연결고리는 끊어졌을지라도, 남을 배려하는 영혼의 고리는 결코 끊어지지 않았다. 해질녘이면 늘 자신이 가서 돌봐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밖으로 나가려 했다. 치매 증상 중 하나인 선다운 신드롬(Sundown Syndrome)이었다. 혼자 외출할 수 없는 게 규칙이라고 하면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거라며 단번에 고집을 꺾는 치매 환자였다. 인지 기능은 손상되었을지언정, 오랜 삶을 통해 다져진 절제력과 긍정적 마인드, 고매한 인품은 망각의 병 그림자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매번 썬 룸에 앉아 뒷마당 숲을 바라볼 때면 “어떻게 이런 깊은 산속에다 교회당을 구했나, 소나무 숲이 둘러싸여 참 좋아”라고 말씀하셨다. “그죠? 우리 할머니들 좋은 공기 마시라고 숲 가운데 있는 건물을 찾느라 고생 좀 했어요.“ 라고 장난을 쳤다. 뒷마당에서 몇 걸음만 돌아 나가면 4차선 도로가 훤히 뚫려 있고 주유소와 약국이 보이는 길을 수없이 다녔음에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셨다. 그때 솔직하게 “목사님, 여기 앞문 열면 바로 번화가에요”라고 정직하게 말했다면 목사님은 또 어떤 재치로 나를 웃게 하셨을까.
목사님과 함께 보내는 동안 치매에도 인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치매라 할지라도 어떤 삶을 영위했느냐에 따라 만들어진 인품은 변질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어느 날 한 스태프가 “목사님, 나중에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는데 천국이 없으면 어떻게 하죠?”라고 농담 삼아 물었다. 목사님은 확신에 찬 어조로 “아니야, 예수님은 절대로 사기 안 쳐”라고 대답하셔서 우리 모두에게 큰 웃음을 주셨다.
중증 치매로 인생 숲에서 영혼은 길을 잃었지만 그가 지켜온 신앙의 지도를 따라 인간의 존엄을 증명해 준 목사님 덕분에 한동안 느슨해졌던 나의 신앙도 제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인간의 존엄성은 내 기억의 연속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는 동안 어떤 태도로 존재했었는지에 달려있음을 깨닫는다. 치매는 기억과 인지 능력을 앗아갈 수는 있어도, 한 개인이 평생을 통해 빚어온 근원적인 품성과 존재 자체를 소멸시키지는 못한다는 깨달음이었다.
말로, 행동으로, 그리고 변치 않는 유머로 우리에게 그 엄숙한 진실을 가르쳐주셨던 최 목사님. 어쩌면 그 분 인생의 마지막 서사는 신께로 부여 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끝까지 깨닫게 하는 일이 아니었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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