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무릎 관절이 시큰거리더니 결국 탈이 났다. 갑상샘 기능 저하로 불어난 체중을 줄여보려고 걷기 운동을 무리하게 계속했던 탓이었다. 다행히 엑스레이 상으론 별 이상이 없다니, 불편함이 조금 나아질 때까지는 한동안 쉬었던 수영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거의 5년 만에 다시 수영을 하려니 호흡이 달렸다. 풀장 벽에 기대 쉬기를 여러 번 하다가 옆 라인에서 헤엄치던 한 여성과 눈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비슷한 연배의 한국 아줌마였다. 늦은 시간에 수영하러 온 이유를 묻기에, 먹고살다 보니 이 시간에야 겨우 짬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나이든 여자가 아직도 일하는 것이 딱하다는 표정이었다. 놀랍다는 말로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그 내용인즉 그녀는 '공직자 출신 남편과 박사 아들을 가진, 평생 한 번도 일 해본 적 없다는 강남 출신 여사님이란 소리였다.
강남 사람은 부자라는 등식을 나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알았다. '강남 바람'이 불기 전에 한국을 떠났던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 잡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외아들이 박사 학위를 딴 후 '박사님'이라고 부르고 싶어 일부러 매일 아들에게 전화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어머니의 행복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서 절로 웃음이 터졌다. 그것도 잠시, 며느리 이야기로 넘어가자 그녀의 입에서는 마치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좋은 점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며, 아무리 가르쳐도 좀처럼 변하는 게 없으니 속상해서 참기 힘들다는 며느리 험담이었다.
잠시 호감을 가졌던 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역시 화가 담긴 말은 파편과 같아서 본인뿐 아니라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껄끄럽게 만든다. "저는 며느리와 함께 살지 않아서 잘 몰라요" 하고 멀어지려는데, 그녀가 내 뒤통수를 향해서 재빠르게 말했다. "자기는 수영하는 방법이 틀린 것 같아. 예쁘게 보이려고 그러는 건지는 모르지만, 팔을 쭉쭉 뽑아대니까 속도가 안 나는 거야."
내 수영 모습이 그녀의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었나? 수영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하지만 내 무릎 건강이 우선이지. 삼십분 동안 수영 하면서. 생각해 보니, 오른쪽 어깨에 오십 견이 왔을 때 고쳐보려고 나름 고안했던 자유형에서 팔 움직임이 몸에 배어버린 것 같았다. 조금 전 옆 라인에서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팔다리를 휘저으며 개헤엄 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쓴웃음이 나왔지만, 어쩌겠나. 내 수영 자세를 스스로 볼 수 없으니 지적해 주는 그녀를 오히려 고마워해야지.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風)이라 하라'는 우화가 있다. 남보다 짧은 혀를 가진 탓에 정확한 소리를 낼 수 없는 서당 선생이 “‘바람 풍’ 한자를 가르치면서 '바담 풍'이라고 했다. 선생이 '바담 풍' 하니 아이들도 따라서 '바담 풍' 했다. 애가 탄 선생이 아이들에게 다시 말했다. "나는 '바담 풍' 해도 너희는 '바람 풍' 해야 한다. 다시 한 번 잘 따라 해 보거라. 자, 바담 풍!" 학생들은 일제히 "바담 풍!" 하고 그대로 따라 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서도 남에게는 올바르게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보여준다. 이 우화를 책에서 읽었을 때, 자식을 아무리 잘 가르치려 해도 부모가 스스로 본을 보이지 않으면 제대로 가르칠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되돌아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가 그러했다. 비록 내가 호의를 베풀어도 상대의 마음과 통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남에게서 '바람 풍'을 기대하기에 앞서, 나의 '바담 풍'은 없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본다. 혀 짧은 선생처럼, 나는 '바담 풍'을 내뱉으면서 타인에게는 '바람 풍'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릇된 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무감각해 지면, 결국 그릇된 것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어쩌면 나조차도 깨닫지 못한 채 잘못된 길을 가면서 아이들에게는 올바른 길을 가라고 외치지는 않았을까.
내가 먼저 바른 본을 보이는 것, 그것이 가장 강력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러니 이제는 누군가에게 '바람 풍'을 요구하기 전에, 내 입으로 내뱉는 '바담 풍'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오직 나부터 '바람 풍'을 정확히 발음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상의 작은 바람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불어갈 수 있으리라. 사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바담 풍'을 외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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