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양로원에 들어서자마자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냄새를 따라가 보니 줄리 할머니 방 앞이었다.
인기척이 없어 불길한 예감에 문을 열자, 밤새 이어진 설사의 흔적이 지독한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며칠 전 사다 드린 변비약을 한꺼번에 네 알을 복용한 것이 문제였다. 당뇨가 있는 지라 우선 혈당 측정을 하니 수치가 뚝 떨어져 있었다. 응급실 의사인 할머니 아들에게 연락하면서, 꿀 한 숟가락을 먹여 드렸더니 할머니의 혈색이 차츰 돌아오기 시작했다.
급히 달려온 아들의 처치 덕분에 기력을 되찾고, 설사도 멎으면서 며칠 후부터는 예전의 건강으로 돌아섰다.
할머니는 우리 양로원의 불평분자다. 양로원에서 지낸 지 6년이 넘어서 이제는 현실에 적응할 법도 한데도 할머니는 거의 매일같이 “자식들이 날 버렸다”는 푸념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기분까지 망쳐 놓던 할머니가 죽음의 문턱 앞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던 것일까? 신기하게도 신세 한탄이 며칠 동안 딱 그쳤다. 내심 반가웠다.
간식 시간에 참외를 나누어 먹으러 식당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차라리 이번에 콱 죽어야 했는데, 왜 살린 거야.” 줄리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닷새도 지나지 않아 죽고파 타령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딱 맞다. 코끝에서는 아직도 오물 냄새가 맴도는 것 같은데, 삶의 가치조차 모르는 사람을 위해 밤새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니 허탈했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함께 사는 분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할머니의 ‘죽고 싶다’는 말을 멈추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과일 간식에 모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의 왼쪽 귀를 피해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귀에 입술을 바짝 붙이고 속삭였다. “줄리 권사님, 정말 죽고 싶어요?” 할머니는 교회 권사이셨다. 눈이 휘둥그레져 나를 쳐다보셨지만, 나는 귓속말을 계속했다.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죠? 권사님의 착한 자녀들은 모두 천국에 갈 텐데, 나중에라도 지옥 불 속에서 괴로워하는 엄마 모습을 천국에서 내려다보면 피눈물 흘리지 않을까요? 살아서 자식들 힘들게 하는 것도 모자라 죽어서도 자식들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어요?”
어르신께는 독침 같았을 그 말이 그야말로 명중이었다. 그날 이후 ‘죽고 싶다’는 할머니의 푸념이 온데간데없어졌다.
아침이면 꽃밭에 물을 주고, 햇볕 좋은 날에는 일광욕을 하며 성경도 읽고, 바람이 선선한 저녁에는 뒷마당에서 산책도 하셨다. 덕분에 뱃살까지 줄어든 할머니의 모습은 다른 이들의 마음까지 밝게 했다. 정말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달라진다는 말이 맞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그렸던 노년의 모습이 있다. 늙고 보니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초라한 인생이 되었을지라도, 삶은 삶이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따라 하다가 잠시 내 갈 길을 잃기도 하고, 남과 비교하다가 내게 없는 것에 속상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백 달러 지폐가 구겨졌다고 그 가치가 사라지는가? 내 삶 또한 마찬가지다. 내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이다. 내 인생의 꽃밭에다 물도 주지 않으면서 어찌 꽃이 피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재수 없으면 백 살까지 산다.”는 어느 노인의 쓸쓸한 농담처럼, 내 앞에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길이 남아 있다.
내 여생의 꽃밭에 장미가 필지, 가시밭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내 노후의 밭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싶다. ‘꽃밭에 물도 주지 않고 어찌 꽃이 피기를 기대할 수 있으랴’ 이 간단명료한 진리를 내가 사는 날까지 잊지 않는다면, 노후의 꽃밭에서 꽃을 피우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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