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불거진 윤석열 대통령의 골프 논란은 대통령의 인식수준과 현 집권세력의 정국운영 방식의 난맥상을 그대로 노정시켜주었다. 대통령이 골프를 쳤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윤 대통령의 골프는 시기와 방식이 부적절했을 뿐만 아니라 불거진 논란에 대한 대통령실의 해명과 대응 또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부터 7차례 정도 태릉CC 등 소위 ‘체력단련장’이라 불리는 군 골프시설을 찾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그가 골프장으로 나간 시기를 들여다보면 과연 대통령이 무슨 생각으로 골프채를 잡은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10월12일은 북한이 남한 무인기가 침투했다며 보복조치를 위협한 다음 날로, 군에 골프 자제령이 내려져 군 골프장 대부분 예약이 취소된 상태였다.
이런 비상상황에서 명색이 군 통수권자라는 대통령이 한가하게 골프장에 나가 라운딩을 즐긴 것이다. 11월에는 “김영선에게 공천을 주라”는 육성파일이 공개된 직후, 그리고 “국민들에게 사과한다”면서 고개를 숙이는 기자회견을 한 이틀 후 골프장으로 향했다.
대통령이 골프장에 나가면 경호상의 이유로 앞뒤로 한 팀씩 두 팀을 비워둬야 한다. 그런 만큼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못한 대통령의 골프는 민폐의 소지가 크다. 실제로 윤 대통령이 나간 골프장에서 대통령보다 앞서 골프를 치던 사람들을 마구 재촉해 “누가 오길래 그렇게 재촉하냐”며 캐디와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이런 사실이 사정당국에 보고되기도 했다.
그나마 사전 연락이라도 제대로 하면 괜찮지만 예약도 없이 당일 통보를 하고 골프장을 찾은 경우도 있었다. 한 골프장 관계자는 사장이 “안 된다”고 난색을 표했음에도 무작정 오더라고 증언했다. 이 말은 정당하게 예약을 했던 상당수 손님들이 부당한 사유로 골프를 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뜻한다. 또 대통령의 민폐는 비단 예약에만 국한되지 않은 것 같다. “카트를 타고 도로를 벗어나 그린 위를 마구 달리더라“는 증언까지 나왔으니 말이다.
윤 대통령의 골프 전말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게 된 데는 대통령의 행태에 불만을 품은 군 관계자들의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보 군인들은 군 통수권자의 모습에서 자기모순과 지나친 권위의식 등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불거지자 대통령 경호처는 제보자를 색출하겠다며 골프장을 취재 중이던 기자를 임의 동행해 “어떻게 알았느냐”고 계속 압박하는 등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일반국민들 위에 올라설 수는 없다. 골프광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14년 노동절 연휴기간에 급하게 골프장을 예약하려다 거부되는 ‘망신’(?)을 당했다. 뉴욕에 머물고 있던 그는 잠시 빈 시간을 이용해 골프를 즐기려 유명 골프장 몇 곳에 예약을 시도했지만 골프장들은 이미 예약이 차 있다는 이유로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했다.
현직은 물론 전직 대통령이 골프를 치겠다고 연락을 하면 두 팀씩 예약이 취소되는 것이 관례인 한국에서는 이런 현직 대통령의 망신을 상상하기 힘들다. 오바마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개인의 권리를,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마구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사회의 상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2022년 2월 유세 열차 안에서 구두를 신은 채 맞은편 의자에 두 발을 올려놓은 사진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이 사진은 매너 그리고 상식과 관련한 윤석열이란 사람의 인식을 드러내주기에 충분한 사진이었다. 골프로 불거진 논란은 단지 그런 몰상식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또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