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리지널 운전면허증은 한남동 시험장 발행, 고릿적 스토리다. 시험관의 빠꾸!는 뒤로 가라는 명령어인데 이때는 반드시 고개를 홱 돌려 어깨 너머를 두 눈 부릅뜨고 살펴 야 합격이다. 게으르게 백미러에 의존 했다간 땡! 그 자리에서 집에 가야 한다. 하지만 그 사이 세월이 흘러 흘러~~요즘 차는 눈 앞에 대문짝 만한 스크린이 나 대신 운전을 한다.
나는 아직도 좁은 주차 공간에서 뒤로 차를 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는 습관이 있는데 젊은 후배들이 옆에 탔을 땐 스스로에게 “참아야 하느니라!” 타이르면서 스크린만 보고 쿠울한 드라이버인 척하지만 속으로는 불안해 죽는다. 어떻게 스크린 안에 그려진 선만 믿고 차를 움직이는가 말이다.
땅에서 하는 운전은 그렇다 치고 도로표지판이나 신호등이 없는 하늘을 날아갈 땐 어떻게 하나? 날씨가 맑은 날엔 조종사가 시야를 확보하여 섬, 산, 강, 큰 도로 등 지형지물을 보면서 운항(시계비행)할 수 있으나 구름이 잔뜩 낀 날이나 높은 고도, 야간 비행 때는 오로지 계기판만 보면서 운항(계기비행) 하게 된다. 어릴 적 위인전에서 읽었던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기 이후 1960년대 까지도 주로 시계 비행이었다. 항공대학 학생들이 계기비행 연습할 때 사용하는 안경은 안경알의 윗부분을 까맣게 칠해서 창밖을 볼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 자기 눈을 믿으면 안된다고 검은 안경이 말한다.
비행기 조종사들이 흔히 만나기 쉬운 두 눈의 시각 혼동이 바로 ‘비행 착각’(Flight Illusion)이다. 최근 한 학생 조종사가 캄캄한 밤중에 이륙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나무를 보고 거리를 착각한 나머지 나무와 충돌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소위 ‘공간정위상실’이다. 사람은 눈으로 보고 몸의 위치나 자세를 능동적으로 정하게 마련. 주변에 경사진 길이나 좁아지는 활주로를 보는 순간 ‘아! 내가 너무 높게 날고 있나?’라고 착각하면서 비행기 앞머리를 갑자기 낮추다가 지면에 충돌하는 사고는 드물지 않다.
2020년 코비 브라이언의 헬리콥터도 짙은 구름 속에서 비행하다가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통제력을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종사는 구름 지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헬기를 급상승 시키고 있다!”고 관제소에 알렸지만 실제로는 급강하했다는 것. 우리가 믿는 눈에 우리가 속는다.
며칠 전 친구와 우리집 동네를 뻔질나게 쏘다니는 무인 자동차 웨이모를 타봤는데 여기서도 스크린과 말을 했다. “하이! 케이! 굿모닝! 탑승해 주어서 반갑습니다! 안전벨트를 매세요.” 짜아식! 눈도 밝네. 웨이모는 교통규칙을 잘 지키지만 LA의 베테랑 한인 택시기사들처럼 요리조리 상황에 대처하려는 마음은 없다. 비보호 좌회전도 잘하고 건널목 건너는 사람들을 피해 우회전도 잘한다. 기특하다. 눈으로 본 것만 믿는 사고체계에 대한 도전이다.
“무엇이? 그게 사실이라고? 내 눈앞에 딱! 보여줘봐. 그러면 믿을게.” 내가 평생 수백 번 써먹은 문장일 텐데 헤헤… 오늘 자로 취소!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