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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칼럼] 슬기로운 연말모임 - 말조심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11-20 17: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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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언제 그렇게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60대의 백인남성은 기가 막혀했다. LA에서 대학교수로 일하는 그는 부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최근 동부에 다녀왔다. 90대 고령에도 아버지는 정정하더라고 아들은 좋아했다.

하지만 아들을 실망시킨 것이 있었으니 바로 아버지의 정치관이다. “아버지의 트럼프 지지가 도를 넘었다”고 아들은 말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던 아버지가 어떻게 그렇게 변했는지 …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그는 탄식했다. 아마도 부자는 나란히 앉아 TV 뉴스를 보다가 의견 충돌이 있었던 듯싶다. 다른 가족들이 이런 저런 의견을 내면서 분위기는 더욱 격해졌을 수도 있었겠다.

비슷한 상황은 지금 미 전국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지난 5일 대통령 선거 이후 많은 가족친지들이 관계의 몸살을 앓고 있다. 배우자든 부모든 형제든 오랜 친구든 상대 후보에게 표를 던진 사람과는 얼굴도 마주 하기 싫은 분위기가 팽배하다.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와 반대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격렬했던 여파, 2024 대선 후유증이다.

“나를 지지했던 모든 미국민들에게 촉구합니다. 다음 대통령이 된 그를 축하하고, 그에 더해 우리의 선의를 보내며, 단합의 길을 찾아가는 진지한 노력에 나와 함께 해주십시오.”  

2008년 대선이 끝난 후 존 매케인 공화당 당시 후보가 한 말이다. 상대후보인 버락 오바마 당선자의 승리를 축하하면서 새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칠 것을 그는 촉구했다. 민주주의의 종주국, 미국에서 전통처럼 굳어진 관행이다. 대선 결과가 나오는 즉시 패자는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에게 축하를 보냄으로써 선거기간 중의 갈등, 마찰, 적대감을 일단락 짓는 절차이다.

그런 품격 있는 전통이 무너진 것은 2020 대선 후였다. 재선에 나갔다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배한 트럼프는 결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선거조작, 가짜투표, 불법이민자 투표 등 온갖 근거 없는 주장들을 펼쳤고, 이에 자극 받은 열혈 지지자들은 의회습격 난동사건까지 벌였다.

그렇게 이어진 4년 동안 트럼프에 대한 호불호는 미국정치사에서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깊게 격하게 갈라졌다. 지지자들이 볼 때 그는 ‘미국을 살릴 구세주’, 반대자들이 볼 때 그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자’. 그런 트럼프가 승리하면서 미국은 지금 열병에 휩싸여 있다. 한쪽에서는 축하와 흥분으로 인한 기쁨의 열병, 반대편에서는 분노와 허탈감으로 인한 울분의 열병이다.

문제는 이를 삭일 시간적 여유도 갖지 못한 채 할러데이 시즌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다음 주 추수감사절을 기점으로 각종 가족모임 친지모임 동창모임들이 이어지는데, 얼굴도 마주 하기 싫은 그 사람(들)과 어떻게 자리를 같이 할 것인가 - 많은 이들은 벌써부터 고민이다.

가장 간단한 해법은 정치얘기를 하지 않는 것. “오랜 만에 만나서 즐거운 얘기만 하자. 괜히 정치 얘기 꺼내서 열 받는 일 없게 하자”고 참석자들과 미리 합의를 보는 것이다.

대선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면 의견을 묻는 자세로 접근할 것. “이번 선거 정말 뜻밖이야. 유권자들 표가 왜 그쪽으로 몰렸을까? 미국이 어찌 돌아가는 거야?”- 하는 식이다. 그리고 나면 차분하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것. 못 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얼굴이 잔뜩 굳어진다면 얘기는 안 꺼낸 만 못하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수십년 이어진 인연을 잘라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올 연말연시에 중요한 것 - 말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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