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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글쓰기 노동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11-15 07:59:34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글쓰기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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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나에게 글 쓰기는 못 본 척 덮어둘 수도 없고 아예 버릴 수도 없는 끈적한 역량의 임무인 것처럼 때론 포대기로 업고 다니는 내 새끼 같아서 보듬고 쓰다듬으며 미흡한줄 알면서도 이어가고 있다. 매주 글을 읽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송구한 터인데 과찬이다 싶을 만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분들에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면서 든든한 팬이 계신다는 자부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글이 어렵다고 핀잔을 주시는 분도 계신다. 부족함을 덮을 수 있는 자양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뵐 때마다 자신의 사연을 글로 지면에 올려 달라는 말을 조르다시피 내비치는 분을 만나기도 한다. 이런 분을 번번히 대하게 될 때마다 그네들의 삶 속에 내가 얼마나 녹아져야 그들의 노정을 그려낸 한 편의 글이 될 수 있을까. 글 쓰기를 경험해 보지 않으셨기 때문인 것도 인정하지만 타인의 삶의 기저에서부터 조화롭게 호흡하며 고유의 삶 에너지를 발견해내는 일은 대단한 가치 발견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나친 욕심에 도전하는 어리석음은 범하고 싶지 않음을 분명히 설명드리곤 한다.  글 쓰기를 사수하듯 유지해오는 동안 문득 소설 같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 누구나 자신의 삶이 소설 한 두 권 분량은 능히 넘을 것으로 파란만장하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 것이다. 인생살이란 평탄치 않으며 굴곡, 곡절, 시련, 기복이 심한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일이다.

삶이란 거창한 담론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가며 만나지는 한 사람, 한사람의 교감이 고통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진심 어린 관계 맺음을 일구어 낼 수도 있음이다. 글 쓰기를 통해 자각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큰 동기 부여가 되어주었고 거기에 생명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공감하며 독자 분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는 뿌듯함이 지금껏 글 쓰기를 이어올 수 있었던 가장 듬직한 길라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생각이 넘치면 글이 되고, 깊은 사유 속에서 나온 글에는 윤슬 같은 눈부심이 엿보인다. 초고가 완성되면 고치고 다듬는

퇴고형을 선호해온 터라 다듬는 과정이 거듭 되면서 수정이 뜸해지면 최종 퇴고에서 탈고로  들어설 수 있기에 퇴고에 정성을 쏟지 않을 수 없음이다. 글은 다듬을 수록 윤기와 탄력 있는 글로 태어난다고 믿고 있기에 작가의 가장 큰 노동을 요구하는 부분이 고치고 다듬는 작업이 작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즐거운 고통이요 노동이다. 추고나 퇴고 중요성은 초고에 못지않은 중요한 작업이다. 농부 발자국 소리를 듣고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 정성을 들이며 다듬을수록 완성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가장 알찬 진액 같은 내용을 뽑아 올리는 작법이 글쓰기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주었고 교두보가 되어준 셈이 된다

깊은 공감의 울림을 시도하기 위해 충분한 교감으로 계속 원고를 읽고 다듬는 반복된 작업의 흐름 속을 구비 쳤던 여울을 얼마나 유연하게 흘러 보냈는지가 독자를 위한 최선의 자세로 견지하며 긴 노정을 흘러 보냈다. 고집스런 생각을 고수해 오는 동안 깊은 강폭일 때도 있었고, 얕은 수심을 만나기도 하면서 기어코 강을 건넜다는 환희를 안겨 주기도 했다. 비어 있는 하얀 지면을 채워 나가기 위해 독서라는 과정을 통해 훌륭한 글들을 끊임없이 만나는 일로 스스로를 소모 시키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이었다. 

인류문명이 새겨진 나이테처럼 생의  나이테에 스며들고 있었던 독서가 묵직한 자산이 되어주었기에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었으리라. 작가적 시각을 넓혀주며 자아확신의 긴요한 끄나풀이 되어주었다. 작가에게는 매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듯 은밀한 관찰도 필수이겠지만 멀리, 그리고  넓게 바라보는 시야도 갖추어야 할 덕목중의 하나이다. 머리 속에서만 글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알알이 들어와 박힌 말들을 쉽고 익숙한 말로 풀어가는 작업이다.

내게는 늘 그랬던 것 같다. 퇴고한 원고를 보내기로 클릭할 때면 찢어진 천막처럼 바람결에 펄럭이던 마음이 고요해지곤 한다. 세상을 향한 소심증으로 닫힌 문을 빙긋이 열고 깨끗하게 빨아낸 빨래를 깃발처럼 내 거는 심정이 된다. 글을 향한 마음을 다독이며 북돋우기 위해 가장 지혜롭다고 생각해온 자가발전적 대책은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고 송고하기까지 이따금씩 꺼내 보는 것이었다. 완고된 글이라 선뜻 올릴 용기가 나지 않거나 마음이 겨울 공기처럼 건조했을 때 이 보다 더 좋은 예비책은 없었던 것 같다. 읽고 쓰고 또 읽고 다듬기를 거듭해 왔다. 글 판 깊숙이 발을 담그기가 늘 두려운 건 변함이 없다. 자신을 돌보는 일은 늘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일상이기에.

어느 화가의 비망록이 떠오른다. ‘어느 순간부터 그림 그리는 일에 자신감을 잃었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보는 자연 색감을 화폭에 재연해 낼 수가 없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을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그림에 자신감을 잃었지만 이런 자연을 마냥 볼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음에 큰 감사를 드리게 된다. 예술을 즐기는 길이 굳이 창작하는 길만 있는 게 아닐 터이니까’. 그랬다. 글을 쓴다는 일도 때로는 접고 싶을 때가 있고 밀려드는 글 감들로 주체 못할 시간도 있었기에 화가가 붓을 놓고 쉬고 싶을 때, 작가가 팬을 놓고 쉬고 싶을 때, 쉰다는 것이 다음 작품의 승화를 위한 필연의 노고일 수도 있겠다 싶다. 글쓰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은 노동이라는 행동의 발현이요 삶을 초탈할 수 있는 미망을 배울 수 있는 아름답고 보람 있는 숭고한 노동이다. 노동의 대가, 보수 또한 숭고한 희열을 안겨 주기에 오늘도 부족하지만 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독자의 마음을 얻어낼 수 있기를 먼저 간절히 기도드리며 노트북을 열게 된다. 노트북을 크릭 하면서 비어 있는 하얀 화면과 마주 앉는다. 글쓰기 노동을 즐길 준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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