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들꽃처럼 사는거다
구름 낀 세월에
찡그리지 않고
말없는 호수에
내 그림자 드리우고
허허로운 하늘을 마주하며
그저 웃는 거다
아름다움을 가꾸며
사는거다
비가 내리면
빗물에 젖고
바람이 불면
나래를 접고
햇살 쏟아지면
홀로 걷고
강물은 여여히 흐르고
길은 저마다 외로운 것
들녘에 이는
황혼에 기대어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그저 들꽃처럼 사는거다 ( 이정기, 시인, 들꽃, 1995년)
갈 들녘을 거닐다 ‘그대는 왜 이한적한 곳에 피었는가?’ 들꽃에게 묻고 싶다. 들꽃이 하는 말이 “저는 이곳에 아름답기 위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갈잎새들이 남기고 간 시를 읽으며 깊은 산 스모키 계곡에 묻혀 하룻밤 지새우며 ‘지심귀명례’ 낙엽이 쓰고 간 시를 듣고 싶다. 요즘처럼 시끄러운 세상에 ‘ 그저 들꽃 처럼 사는거다’ 그 깊디 깊은 시혼이 어디서 찾아 온 것일까… 아무리 마음을 뒤져 보아도 시혼이 내 영혼을 흔드는 ‘비움’을 찾을 수 없어 가끔은 글 쓰기도 ‘그만 두자’마음의 갈등이 크다. “참으로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나의 내면에 무언가 하실 수 있도록 나의 가슴을 텅 비워 놓아야 한다.”
위대한 스승들은 말한다. 나의 이 작은 마음이 하늘에까지 닿을 수 있는 그 경지란 하늘 은총 아니고는 감히 넘겨 볼 수 있을까. 한송이 들꽃은 동양적 ‘무위의 경지’라 말한다. 하늘의 소명이 아니고는 나같은 촌부에겐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경지 아닌가 싶다. 사람에게서 그 들꽃 같은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정소영 박사님이시다. 그녀는 서울신학대학원장을 14년 역임하시며 기독교 교육, 육아 교육을 학계에 많은 업적을 남기셨다. 지금은 은퇴하시어 아틀란타에 들꽃처럼 조용히 살고 계신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산골에 핀 들국화처럼 사신다. 풀꽃 마음으로 아름다움을 가꾸며 그저 웃으며 사신다.
내 마음
한칸은 바람에 내어주니
그 어떤 집보다 큰 정신이 깃든곳 (시 .총재)
맑고 깨끗한 소녀같은 모습… 조용히 들꽃처럼 웃으신다.
지난달 아틀란타에서 이화여대 음악회가 열렸다. 그날 연주곡 중에 ‘이화, 이화 아름다워라’란 곡을 정소영 교수께서 손수 작사, 작곡을 하셨다.
아침이면 매일 피아노 연주를 하시고, 작곡도 하신단다. 나는 정박사님과 20년간 매달 만나서 함께 식사를 하는 행운을 가졌다. 우린 소녀처럼 그냥 웃고, 남의 흉도 보고, 가끔은 우리 시골집에서 꽃이 피고 지는 소리를 듣고 웃음꽃 피운다. 언제나 목련화처럼 우아한 모습, 격조와 품위를 잃지 않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들꽃처럼 사신 그 순수함, 조용한 동양화 묵화 냄새가 난다.
사람은 왜 사는가…
아름답기 위해 산다
들에 핀 백합화도
그 향기 전하기 위해
수고도 길쌈도 없이
그저 피었다 지는데
요즘 사람은 전쟁하러
태어났다 죽으려는가
들꽃처럼 살고 싶다
깊은 산 산안개 보듬고
그저 그렇게 왔다 가고 싶다. (졸시, 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