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전형적인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허리케인이 만행을 저지르고 지나간 애틀랜타의 시월은 마치 심하게 혼쭐난 아이처럼 우울해 보였다. 잿빛 하늘에 무겁게 내려앉은 구름이며 잔뜩 찌푸린 채 쌀쌀맞은 표정이 마치 며칠 굶은 시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한더위 열기가 식은 시월의 애틀랜타가 낯설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괜히 친절을 베풀고 싶어 졌는데 이렇듯 순후한 기후로 다가서자 차분해진 기온이 반갑기도 하고 안정감을 건네 준다. 태풍이 공중에 떠있던 분진까지 씻어주고, 가로수도 나무들이 모여 있는 숲까지 말끔히 닦아주고 간 뒤끝 인지라 만상이 싱그러워진 느낌마저 들었다. 소나기 후의 선명함처럼. 계절 흐름이란 알 듯 모를 듯 모호한 경계를 넘기 마련인데 헬린 이전과 이후가 선명한 라인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럭저럭 시월은 산전수전 다 겪어낸 중년의 체념 가득한 모습이다. 여름은 소임을 다하고 날렵하게 몸을 낮추었고 숲은 가을 환승, 가을 행복이란 카드섹션을 화려하게 펼쳐내고 있다. 숲에 남겨진 더위 조차 계절 이랑을 건너온 시월 속으로 빠져들면서 그리움이, 아쉬움이 깊어짐을 노래하고 싶은 모양새다. 해서 시인들이 가을을 노래하기를 즐겨하는 것이리라.
서리 주의보가 내린 시월이다. 시월 서정이 나붓이 들어서면서 가을 문턱을 넘어섰다. 다시금 숨 고르기를 하며 시월 상달을 맞이했다. 이제껏 힘차게 달려왔던 생의 깃발을 멈추고 깊은 심호흡으로 숨 고르기를 해야 할 시점에 당도했다. 시월 상달이라 했던 것도 추수, 수확을 끝낸 감사의 뜻을 되새겨 보게 한 것이리라. 일년 중 가장 신선한 달로 ‘좋은 달’ ‘으뜸 달’을 칭한 것인데 어쩌면 하늘이 높아짐을 칭송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끼어든다. 시월은 살아 온 여정을 뒤돌아보게 하고 남은 날들을 어찌 살아가야 할지를 묵상으로 풀어 가라며 일러 준다. 내려 놓음으로 무방비 상태의 비움을 감행하는 것 까지도, 여전히 친숙해지지 않는 이방인 삶이라서 본향을 돌아보게 하는 그리움이 차오르는 것은 생존을 추구하는 나그네 인생의 본능을 세밀하고 집요하게 추적해온 감성 발로일 것이다. 시월은 낮아짐을 추구하며 비움과 떠남을 묵묵히 몸소 보여주고있다. 시월이 돌아왔고 시월 따라 가을이 들어섰기에 사랑과 꿈이 새겨지는 계절이 된다. 풍성하지만 교만하지 않은 계절 향기를 천지에 아낌없이 남겨두려는 고매하고 수려한 청아와 찬연이 미려한 시월이다. 가을 산야를 찾아 나서는 객들을 위해 가을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선 느낌을 심어주려 천지는 지금 가을이 익어 가는 소리로 가득하다.
시월이 군림하 듯 선뜻 다가서는가 했더니 쾌속정 타듯 시월 끄트머리가 바로 저 만치로 다가 왔다. 여름 내내 애틀랜타 특유의 땡볕 더위를 보낸 탓에 여태껏 머물고 있는 한낮 더위로 하여 어느 새 가을 기운이 들어선 것도 속수무책이 될 뻔했다. 아직은 남아있는 초록도 서서히 가을 옷으로 변복 중이다. 계절 환승을 느끼게 해주려 애틀랜타로 찾아 든 가을이 옷깃을 세우며 한 편의 수필을 마련해 보라 한다. 가을 길 위에 놓인 오솔길도 산야도 우리네 인생살이도 가을 수필을 삽화처럼 그려내고 싶은 마음이 일렁인다. 흐르는 구름에도 가는 길이 있을 것 같고, 한 줄기 바람에도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소박한 마음이 되어 하늘을 올려다 보는 눈길에도 수필로 가득 채워진다. 정결하고 진솔한 붓을 잡은 마음에 비움과 내려놓음을 잊지 말라는 가을 메세지로 더없이 평화롭고 처연해지는 애틀랜타 시월이 정겹고 평화롭기 그지 없다. 아직 초록이 남겨진 풀잎이며 나뭇잎 색갈이 진한 향내를 발산하며 일교차가 빚어내는 새로운 색상을 오롯이 새겨 가기를 준비하는 하루하루들이 시월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른 아침 기온은 겨울을 재촉하고 한낮 기온은 가을로 남고 싶어하는 표정이다.
가을이 들어서면 문득 문득 떠나고 싶은 망설임이 인다. 기차를 타고 낯선 간이역에 내려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들길에 머물고 싶어 진다. 또한 가을을 귀환의 계절이라 한 것은 존재의 근원을 찾아 다시 돌아가고 싶기 때문일 게다.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고, 가족이 동거하는 둥지가 있고, 그리운 고국이 있다는 것으로 그리움을 풀어내고 있기에. 우리네 인생 가을도 회귀본능의 자기애가 깊어지면서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도 함께 깊어지는 까닭일 게다. 구월도 십일월도 가을이 독점할 수 없는 계절인 셈이라서 시월은 온전하게 가을을 누릴 수 있는 가을의 계절이다. 계절 따라 특유의 생기와 색깔이 있지만 시월 만큼은 맡은 역할 수행에 알뜰한 시기도 없을 듯 하다. 자연 스스로의 회귀와 재생도 한몫 하겠지만 조건 없는 풍요와 알찬 결실로 하여 세상살이에 지친 인생들에게 보람과 희망을 안겨준다. 계절이 맺혀준 열매들이 알알이 익어가고 열매를 거두는 수확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는 시월이다.
사월 숲의 소박한 사치와 고요와 흥취의 찰나가 금방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조바심이 인다. 사계절 순환 속에 인생의 여러 단계들을 깨달음 할 수 있도록 빈틈없는 완벽함을 갖춘 무대를 선사해 주고 있는데. 시월이 품은 서정을 따라 우리네 인생도 제 각각의 서정적 모습으로 가꾸어 지고 있음을 본다. 우리네 일상에도 계절이 담겨져 있음이라서 계절과 어우러지며 인생 여정을 그려가게 될 것이다. 세상은 어차피 다 알고 떠날 수도 없음이요 생로병사에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창조 질서 따라 시월의 숨결을 겸손함으로 받아들여야 할 과제라서 누림을 허락 받은 자유를 공손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하루가 다르게 풍성하던 잎새들이 색조를 달리하고 하나 둘 낙화하 듯 흩어지는 날이 다가오면 어김 없이 ’Autumn Leaves’ 선율이 떠오를 것이다. 그윽하고 고즈넉한 평화가 깃든 애틀랜타의 시월이 천천히 지나가 주기를 바램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