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 목사
우리의 삶에는 부모에게 순종하기 어려운 상황이 종종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어떻게 순종을 실천할 수가 있을까 하는 질문의 대답을 얻기 위해 모든 권위. 즉 우리의 윗 사람들에 대한 순종의 성경적인 원리 몇 가지를 제시 하고자 합니다. 첫째 순종의 이유가 권위자의 인격 대문만이 아닌 권위자의 위치 때문임을 기억 하십시오. 성경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순종하지 못한다고 할 때 그것은 부모의 인격을 존중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내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분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 부모가 내 부모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 부모를 내 부모 되게 하신 분이 하나님 이시고 그래서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면 하나님이 주신 그 위치. 즉 권위는 아직도 존경되어야 합니다. 그 모든 위치를 거절했을 때 이 세상이 나아갈 방향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성경 고린도전서 14:33에서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라.” 고 하며 같은 장 40절에서는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질서의 하나님께서는 한 가정 안의 질서가 존중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부모를 순종해야 할 이유는 부모가 내 존경을 받을 만한 매우 위대한 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부모가 나의 부모이기 때문이며 그 위치를 하나님께서 정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권위들을 통하여 우리를 성숙시키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부모나 그 밖의 모든 권위들을 통해서 우리를 성숙시켜 주시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18 이하의 말씀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 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그리고 나서 재미있는 말씀이 나옵니다.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직장에서 보면 까다로운 분들이 있습니다. 또 내 부모나 시부모가 까다로울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이 까다로운 분들에 대한 순종의 중요성도 강조합니다. 왜 입니까? 그 다음절에 보면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19-20절)고 합니다. 왜 아름 답습니까? 그 다음 절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21절)고 했습니다. 즉 그것이 그리스도의 자취를 따라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닮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애매하게 고난을 받으면서도 순종과 권위와 질서를 존중히 여기며 묵묵히 선한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우리의 인격이 성숙합니다. 주님을 닮아갑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라는 망치와 어머니라는 못을 사용하여 자녀인 나를 깎아내고 계십니다. 이 아픔을 거부 한다면 우리는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될 수 없습니다. 내게 부모를 주셔서 나를 만드시는 하나님/ 나를 하나의 보배로운 인격으로 빛으시는 하나님이시므로 그 까다로운 부모의 손길과 음성 속에도 하나님의 뜻은 있습니다. 세 번째로, 권위들이 지시하는 명령이나 금기의 근본적인 동기를 실피십시오. 명령이나 금기는 모두 “하라. 하지 말아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 스럽습니다. 그러나 왜 이렇게 하지 말라고 하실까 생각 해 보면 그 깊은 곳에 자녀에 대한 애정의 동기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어떤 부모는 자녀가 신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반대할 수 있습니다 그 부모가 나빠서입니까? 자녀를 걱정하는 그 동기는 여전히 선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