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판, 조르주 쇠라, 분을 바르는 젊은 여인, 1889-1890, 캔버스에 유채, 95.5 x 79.5 cm
‘분을 바르는 젊은 여인’, 조르주 쇠라가 1889에서 1890년 사이에 그린 그림이다. 처음에는 배경 벽의 두 덧문 사이에 여인을 바라보는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하지만 고민 끝에 그 위에 꽃병을 그려 자신의 얼굴을 덮어버렸다. 꼴이 좀 우습게 됐다. 그 자리에 테이블과 꽃병은 썩 어울리지 않는다. 이를 모를 리 없었음에도 그는 왜 자신의 얼굴을 지워야 했을까.
쇠라의 짧은 인생에 극적인 요소는 없었다. 중산층 가정, 대학에서의 회화 전공, 복장은 늘 정장 차림에 일상은 규칙 자체였다. 말수가 적고 감정의 변화는 크지 않았으며 내성적이었다. 이런 기질은 그의 회화와 연애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의 그림들은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구사된 무수한 점들로 덮였고 연애는 끼어들 틈조차 없었다. 변덕스러운 인생과 사랑에 회화를 의탁하고 싶지 않았기에 쇠라는 그 둘을 떼어놓는 길을 택했다.
오로지 한 여인만이 그림에만 파묻혀 살았던 이 금욕주의적인 사내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결코 공략당할 것 같지 않았던 그의 내면의 은신처로 인생이 스며들도록 한 것이다.
한때 그의 모델이었던 마들렌 크노블로크, ‘분을 바르는 젊은 여인’의 주인공인 바로 그녀다. 쇠라는 그녀와의 관계를 철저하게 숨겼다. 아마 화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에 남자로서의 정체가 뒤섞이기를 원치 않는 그의 기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야 마들렌느가 그녀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그를 알던 모든 이들이 놀라워했다.
더 믿기 어려운 것은 마들렌에게서 풍기는 인상이었다. 가볍고 수다스러워서 어떤 지적이거나 정신적인 분위기도 찾기 어려운, 허약해 보이는 몸으로 회화 이론을 열변하는 쇠라와는 너무도 상반돼 보이는 용모였다.
하지만 그녀의 풍만한 몸매에 깃든 어떤 아름다움이 창백한 이론주의에 끊임없이 빠져들도록 재촉하는 쇠라의 내면의 공백을 채워주었던 것이 분명하다. 종종 고치기 전의 그림이 진실에 훨씬 더 가깝다.
<심상용 서울대학교 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