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에 비해 로봇 산업의 변방으로 취급되던 유럽이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일판 ‘보스턴다이내믹스’로 떠오르는 노이라로보틱스는 이달 6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한 국제 가전 박람회 ‘IFA 2024’에서 옷을 다리는 등 가사 업무를 수행하는 휴머노이드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4NE-1’로 명명된 인공지능(AI) 로봇이다. 회사 측은 이 로봇을 산업 현장의 조수 역할은 물론이고 가사 지원도 하는 범용 도우미로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로봇이 스스로 주변 환경을 인지할 뿐 아니라 인간의 작업을 학습해 주인의 명령을 자동으로 수행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노이라로보틱스의 모태는 2019년 설립된 산업 제조용 로봇 개발 회사 한스로봇의 독일 법인이다. 해당 법인 설립 멤버였던 다비트 레거는 이듬해 11월 독립해 노이라로보틱스로 사명을 바꿔 재창업한 뒤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다. 독일 대표 기업 보쉬 등에서 우수 인재들을 영입해 단기간에 AI 기반의 로봇들을 줄줄이 출시했다. 그 결과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기준으로 4억 5000만 달러어치의 주문을 확보했다. 글로벌 공급망 분리 현상에 대응해 연내 중국에서 독일로 로봇 공장을 이전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로봇의 본고장인 미국·일본 등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독일 등 유럽은 AI·로봇 등 미래 핵심 성장 동력 분야에서 미국·중국 등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독일의 간판급 로봇 제조사 쿠카로보틱스가 2016년 중국 가전 업체 메이디에 매각돼 유럽인들에게 충격을 줬다. 이런 상황에서 노이라로보틱스가 휴머노이드 로봇을 발전시키면서 일약 스타로 떠오른 것이다. AI 기술과 융합한 휴머노이드는 제조·물류 등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국방·치안 등 사회적 안전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인류의 삶의 질을 혁신할 게임체인저로 꼽힌다. 휴머노이드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에서도 산학연정이 원팀으로 힘을 모아 노이라로보틱스와 같은 벤처·스타트업을 성장시킬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고광본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