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0년 전 남편과 이혼하고 미국에서 태어난 아들 하나를 길러왔습니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연방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데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가 걸려 알아보니 이혼증명서와 아버지의 주민등록번호 등을 넣어야 한다는데 전남편과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 서류접수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딸아이가 사관학교를 목표로 공부하다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가 걸려 결국은 포기하고 주립대학으로 정했습니다. 남편은 몇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딸의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국에 혼인신고부터 사망신고까지 거쳐야 할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까다로워 포기했어요. 한인 2세들이 한국의 귀한 자산인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습니까?”
많은 한인 2세들에 불이익을 안겼던 한국 국적법의 선천적 복수국적제 개정을 위해 한국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제도 신설’ 방안이 근본적 문제 해결책이 아닌 ‘땜질식 처방’인데다 제도 개선을 위한 의견수렴 절차도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미주 한인사회의 반발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의 불합리한 점 개선에 앞장서 온 전종준 변호사 사무실에는 요즘 이같은 한인들의 ‘어찌 하오리까’ 문의가 몰리고 있다.
전 변호사는 “선천적 복수국적으로 곤경에 처한 한인들의 문의가 많은데 이혼으로 상대방과 연락이 끊어진 경우 심지어 어느 공관에서는 재혼해 호적을 새로 만드는 게 빠르다고 했다는 어이없는 얘기도 들린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법무부가 아직도 부모의 이혼, 부나 모의 사망 및 외국인 부나 모 등의 경우 국적이탈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무시한 채,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제를 추진하는 것은 ‘인권 침해’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9월 국적이탈을 제한하는 국적법 제 12조 등에 대해 한국 헌법재판소가 내린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한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나온 법무부의 개정안은 현행 국적법에 따른 정해진 기간 내에 국적이탈 신고를 하지 못한 선천적 복수국적 소지자는 예외적으로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본인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국적이탈을 못함으로써 중대한 불이익이 예상되는 경우 재외공관을 통해 법무부 장관에게 국적이탈 신청을 하면, 국적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허가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인데, 그러나 이같은 방안은 재외국민 자녀들에게 시간적 부담만 더 안길 뿐 근본적 대책이 아니고 실효성도 없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법무부가 한국시간 오는 26일 의견수렴을 위해 개최한다고 밝힌 온라인 공청회의 지정 토론자들이 대부분 재외 한인 2세들의 피해 실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내 인사들로만 이뤄지는 등 실질적인 전문가들이 배제된 채 구색 맞추기에만 급급한 상황이라고 전 변호사는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전 변호사는 지난 14일 한국에서 발행되는 법률신문에 이번 공청회의 법적 부당성을 지적하는 기고문을 게재했다.
기고문에서 전 변호사는 “한국의 정계나 법조계 인사들이 공청회 전에 선천적 복수국적에 관한 이슈를 파악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면서 “법무부는 일방적인 공청회를 중단하고 복수국적의 회오리로 한인 2세가 정계나 공직을 사퇴하는 등 불상사가 터지기 전에 신속하고 올바른 대체입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고문을 읽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신봉기 교수는 “헌법불합치 결정취지와 선천적복수국적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법안이 성안돼 있는 것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전 변호사가 지난달 30일 시작한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제도 신설’에 이의 개정을 요구하는 서명 캠페인(www.yeschange.org)에는 18일 오후 현재 4,895명이 서명해 5,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정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