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7.8 강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하기 직전 새떼와 개들이 이를 미리 감지한 듯 이상행동을 보였다는 증언이 잇따르면서 동물들이 느낄 수 있다는 이른바 지진 전조 현상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일부 동물의 경우 사람은 느낄 수 없는 미세한 진동을 감지할 능력이 있는 만큼, 이같은 추정에 아예 이론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7일(현지시간) "동물이 인간에 앞서 강력한 지진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고대부터 이어져 왔다"라며 전조 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해석과 전문가들의 견해를 소개했다.
특히 지진이 발생할 때 지구 내부 암석이 파괴되며 사방으로 전달되는 흔들림, 즉 지진파의 미세한 부분까지 한발 앞서 감지하는 지진계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일부 동물이 진동을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다고 WP는 설명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지진 발생 후 최초로 방출되는 진동인 P파(primary wave)는 진원에서 불과 몇초만에 수㎞씩 빠르게 전달되는데, 동물들이 이를 쉽게 알아챌 수 있다고 한다. 통상 지진 예보에도 이 P파가 쓰인다.
P파 이후에는 지표를 위아래 혹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게 하는 S파(secondary wave)가 나오는데, 이동 속도는 P파보다 느리지만 파괴력은 훨씬 강하다.
USGS는 "지진 발생지에서 가장 빠르게 전달돼 우리에게 도착하는 P파를 S파보다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하지만 감각이 예민한 많은 동물은 S파 도착 이전에 P파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실험에서는 동물들이 지진계보다 더 빨리 지진 발생을 감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독일 공립 과학연구기관 '막스플랑크협회' 산하 동물행동연구소가 2020년 발표한 연구 내용을 보면, 연구진은 이탈리아 한 농장의 소와 개, 양들에게 전자 태그를 부착하고 지진 감지 전후 행동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실험기간 발생한 8번의 지진 중 7번의 경우 지진이 공식 감지되기 전 동물들이 45분쯤 전부터 이상할 정도로 활동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경향이 포착됐다.
먼저 소들이 얼어붙은 듯 움직임을 멈추더니 뒤이어 개들이 미친 듯이 짖기 시작했고, 곧이어 양과 소도 흥분 상태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이 연구를 이끈 마르틴 비켈스키 소장은 동물이 잠재적으로는 사람보다 12시간 먼저 지진을 감지할 수 있다고 추정하며 "동물이 느끼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이는 여전히 블랙박스 속에 있다"며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WP는 기원전 373년 로마의 작가 클라우디우스 아에리아누스가 당시 지진이 도시 헬리케를 덮치기 전 쥐와 뱀, 딱정벌레, 지네 등 동물이 도시에서 빠져나갔다고 쓴 바 있다고 소개했다.
최근에도 동물 이상행동을 지진 전조로 연결 지어 해석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008년 중국 쓰촨(四川)성 지진에 며칠 앞서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떼가 어디론가 이동하며 도로변에 쏟아져 나온 바 있다.
2016년 미국 오클라호마 지진 15분 전에는 새 수천 마리가 하늘을 뒤덮으며 레이더에 관측될 정도였다.
이번 튀르키예·시리아 강진 직후에도 소셜미디어에 비슷한 종류의 영상이 올라 눈길을 끌었다. 지진 직전 새벽 시간대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영상에는 수백 마리의 새 무리가 하늘을 어지러이 빙빙 맴돌다가 나무 꼭대기에 모여앉는 모습이 담겼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