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쿠데타 이후 일상이 된 정전으로 칠흑같이 어둡던 미얀마 밤하늘에 11일 수많은 불빛이 넘실댔다. 동네 어귀에 삼삼오오 모인 시민들이 각자 준비한 손전등과 휴대폰 불빛을 일제히 어둠 속으로 쏘아 올린 것이다. 군부의 잔혹한 유혈진압이 계속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평화를 원하며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이른바 ‘불빛 시위’다.
빛은 최대 도시 양곤을 시작으로, 샨ㆍ친ㆍ몬ㆍ사가잉주(州) 등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동시에 켜졌다. 불빛 시위 개최 소식을 들은 대만의 민주세력 역시 비슷한 시간 타이페이 광장에서 미얀마를 향해 불빛을 비췄다. “지금은 어둡지만 우리는 곧 평화로 다시 빛날 것이다.” 양곤 탐웨 지역에서 불빛 시위에 참여한 카웅(30ㆍ가명)은 담담히 희망을 말했다.
미얀마 시민들은 군부의 발포와 폭력에도 평화 시위의 끈을 놓치 않고 있다. 12일 미얀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평화 시위 중심에는 양곤과 만달레이가 있다. 2월 1일 쿠데타 발발 이후 대규모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두 지역은 군부가 대놓고 중화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지난달 중순 이후 대규모 거리시위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고심하던 시위대는 최근 대규모 군집을 피하고 개별 가정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저항 방식을 개발했다. 실제로 전날 낮에는 나뭇잎에 각자 원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 공유하는 ‘그린데이(green day) 시위’가 전국에서 진행됐다. 봄을 맞아 푸른 싹이 돋아난 것처럼 미얀마에도 평화가 다시 피어나길 바란다는 취지다.
남부 농촌 지역 여성들은 봄꽃과 싱싱한 묘목들을 안고 거리를 걸었다. 그린데이 시위 피켓을 앞세운 이들은 침묵 속에서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만 이어갔다. 대학생들은 지금까지 사망한 시위대의 이름을 빼곡히 담은 대형 현수막을 고가도로에 걸었다. 각자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으로 평화로운 방식의 저항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군부는 더 악랄한 방식으로 시민들을 찍어누르고 있다. 9일과 10일 최소 82명의 시민이 학살된 남부 바고 지역은 사흘째 외부 출입이 통제된 준(準)전시 상황에 놓여 있다. 일부 시민은 “군경이 수많은 시체들을 도심 중앙의 사원에 쌓아뒀다”며 “사망자가 현 집계의 배는 될 것”이라고 고발했다. 바고대 학생회는 “군부가 사망자들의 시신을 돌려주는 대가로 85달러씩 요구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미얀마 상황은 13일부터 약 일주일간 이어질 최대 연휴 ‘띤잔’을 기점으로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군부는 고향을 찾은 수많은 시민이 친지들과 함께 시위를 벌일 가능성을 고려, 지역별로 군병력 운용 계획을 다시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