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 권명오
수필가 · 칼럼 니스트
Ⅰ 한국 38년(58)
제대와 새 출발
군생활 3년 2개월 후 기다리고 고대한 만기 제대 특명을 받고 경기도 소사에 있는 예비사단에서 제대 수속을 끝내고 예비군 훈련에 관한 의무 사항을 들은 후 3년 전 군에 입대해 논산 훈련소에서 고락을 함께 한 동기생들과 식탁에 둘러 앉아 동동주 술잔을 나누며 그동안 각자 겪은 추억들을 신나게 떠들고 헤어진 후 서울 외사촌 누님댁에 임시 거처를 정하고 옛 신무대 실험극회 회원들과 앞날을 의논하려고 했는데 그 사이 최불암씨와 김순철씨는 군에 입대를 했고 소극장 신무대 실험극회는 재정적인 문제로 연극활동이 중단된 상태였다. 부산 MBC 문화방송국 성우로 있던 전운씨만 MBC 방송국 서울 개국으로 인해 열심히 활동 하면서 연출자 이철향씨와 함께 연극 공연을 추진 중이었다. 당시 전운씨는 신인 성우라 출연료로 서울에서 생활하기 힘들어 나와 함께 외사촌 누님댁에서 합숙 생활을 하게 됐다.
예측은 했지만 배우 지망생들의 현실은 험한 가시밭길 이었다. 3년간 편지를 교환했던 안신영씨는 청량리 전농동에 살고 있고 나는 청량리 제기동 가까운 거리에 있어 편지 하는것도 그렇고 또 현 생활과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에 편지를 쓸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그 당시 KBS – TV 방송국이 개국한 지 3개월이 지났고 KBS 탤런트 1기생들이 TV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었는데 다시 2기생을 모집 한다는 소식을 전운씨가 알고 와서 내게 응시하라고 권했다. 1기생 중에는 신무대 실험극회 회원인 최정훈씨와 태현실씨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공개 모집과 시험에는 왠지 자신이 없었고 만약 불합격이 되면 체면상 앞으로 연극 활동을 하는데도 큰 해가 될까 두려웠다. 그야말로 어찌 해야 좋을지 To Be OR Not To Be 였다.
1961년 연극 영화과 졸업생들과 배우 지망생들이 먹고 살 길은 국립극단과 영화계와 방송국 밖에 없어 할 수 없이 KBS – TV 탤런트 모집에 응하기로 했다. 그 당시 KBS – TV 는 국영 방송국이라 합격만 하면 가장 안전한 직장이 될 수가 있다. 어떤 면에서는 나에게 온 행운의 기회다. 운명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어떻게 하든 KBS – TV 공채 모집에 합격해야 될 절박한 처지인 나에겐 다른 길이 없다.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가 그 길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원서를 접수하고 시험을 쳤다. 서류 심사와 필기 시험도 중요 했지만 무엇보다 카메라 테스트와 실기 시험이 가장 중요했다. 명성이 자자한 유명 연극 영화계와 방송계 심사위원들 앞에서 작중 인물을 연기 해야하는 실기시험이 나의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열심히 했지만 끝나고 나니 생각보다 잘 못한것 같고 자신이 없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주사위는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