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냇물 위로 희어진 허름한 다리 옆에서그들의 깃발은 6월의 미풍에 날리었다
여기 예전에 농부들이 진을 치고
그들이 쏜 총소리는 온 세계에 울리었다
적은 그후 오래 고요히 자고 있다
승리자도 고요히 자고 있다
그리고 세월은 너무 낡아 무너진 그다리를
바다로 가는 어두운 물결에 쓸어 버렸다.
이 푸른 언덕위에 이 고요한 시냇가에
오늘 우리는 기념비를 세우노라
선조들과 같이 우리 자손들도 간 뒤에
기념비가 그 공적을 보답할수 있도록
그 용사들로 하여금 용감하게 죽게하시고
그들의 자손이 자유를 누리도록 하신이여
세월과 자연에게 길이 아껴라 하옵소서
그들과 당신에게 드리는 이 비석을 ( 시, 랄프 왈도 에머슨 1837년 7월 4일 전쟁 기념비 건립식에서)
한국전 6.25에는 육해공군 160만명이 전투에 참전 피끓는 젊음을 남의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때 나이 19살 청년들이 9순이 넘은 할아버지가 되어 조국 대한 민국을 다시 찾았다. 그 참전 용사들 중에 15명의 참전 용사는 ‘나는 죽어도 한국에 묻히고 싶다.’부산 유엔 참전 용사 묘지에 안장되셨다. 이수덕 여군 참전 용사는 ‘나는 나라가 망하는것을 볼 수 없다며 여군에 입대, 머리를 깎고 죽을 각오를 하고 여군에 입대하셨다. 서울 신라 호텔에서 대통령이 주관한 참전용사 72년 기념 행사에는 그날 19세 청년들이 허리가 굽은 9순의 노장병들이 한자리에 모여 72년 후 지금까지 한국이 분단의 아픔을 겪는것을 가슴 아파하셨다.
콜럼버스 조지아 포트 베닝에는 한국전에서 목숨을 잃은 3만7천 미군 병사가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가 세워질 예정이다. 내년 6월 완공 목적으로 백만불 예산이 모금 중이다. 포트 베닝 참전 용사 기념관은 185,000 스퀘어피트로 133에이커 대지에 2차 대전 미군 기념관으로 매년 3백만 찾아오는 미국인의 사랑받는 기념관으로 참전 용사 뿐 아니라 미 보병 훈련소로 널리 알려져있다. 그 기념관 ‘로버트 쵸파’회장은 지난번 우리 집에서 다민족 행사에 참여하셨고 부인과 더불어 한밤을 주무시고 가셨다. 그날 행사가 끝나고 몇 분이 함께 티타임을 가졌다. 그때 정복을 벗고 반바지에 반소매 옷을 갈아 입고 있는 모습이 그옛날 고향에 형제를 만난 듯 다정한 모습에 내가 당신은 꼭 옛날 한국에서 내 동생을 닮았다고 했더니, Yes, I am your brother. 이라 하셔서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초라한 집이라 미안하다 했더니 그의 부인 Mindy 하는 말, 우리집은 100년된 집인데 그것도 몇 년 전 불이 났어 하며 웃었다. 내 해바라기 그림을 너무 좋아 하시기에 드렸더니, 얼마나 뜨거운 감사의 답장을 보내 주셨다. 내 이민의 아픔의 희노애락이야기는 자신의 삶에 크나큰 힘이 되셨다고 감사의 글을 보내 주셨다. 메모리얼 기념 메달까지 내 목에 걸어주셨다.
가슴과 가슴에 울리는 따스한 인간의 정, 그것이 진정한 외교 아닐까… 사람이 만나서 인간의 참 향기가 온 집에 가득했다. 쵸파 대령은 수많은 전투에서 온몸에 수많은 총 자국, 미국을 위해 온 인류를 위해 헌신하신 군인이셨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사는가’… 톨스토이는 말했다. ‘사람은 사랑을 위해 산다고’ 사랑을 위해 젊음을, 생명을 바치신 위대한 영웅들이여… 뜨거운 사랑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