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하루가 저물고, 한 달이 흐르고, 계절이 겅중겅중 건너 뛰더니 어느새 임인년이 저물겠다고 서둘고 있다. 무한대 우주공간 속에서 유한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인생이라 기울어질 날이 기어코 찾아올 것이다. 긴 기차여행을 끝내고 종착역이 바로 저 만치인데, 차창 너머 풍경까지도, 눈여겨 보아왔던 시야에서 점점 흐릿하게 스치운다. 풍경은 빠른 속도로 뒤로 물러가는데 세월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또 다른 새 날이, 새해라는 이름으로 찾아 왔다. 임인년 마지막날 아침에 떠오른 해와 계묘년 새해 아침에 떠오른 해가 묵은 해와 새해를 구분지어주지만 새 해라 해서 그리 야단스럽지 않으려 한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오늘 일 터이니까.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기를 지향하려 한다. 시작은 늘 비장했고 마무리 무렵이면 치열했던 만큼의 아쉬움이 밀려들었으니까. 어떤 인연의 점 하나가 보태어질까. 어떤 추억의 하루가 기억으로 남겨질까. 어떤 목표가 드디어 마침표 찍기를 해주려나. 장대하지 못했던 날 들에게 더 후한 칭찬으로 격려를 아끼지 않으려 한다. 누구에게나 새해 행운을 누릴 자유가 골고루 주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해마다 송년 절기가 들어서면 한 해를 결산하며 시대상을 반영하는 키워드가 되었던 말들을 뽑게 된다. 2022 월드컵,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전쟁, 세계적인 경제 인플레이션, 심심찮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 암울한 단어를 뒤따라 정계, 재계, 사회적 지도층들이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염치없는 뻔뻔한 이기심을 조준한 한국 교수 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선정했다.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이 바로 잘못이라는 것과 맥을 잇는 말이다.
지하갱도에서 221일 만에 생환 된 광부의 말처럼 끝까지 희망을 붙잡는 마음 자세로 송년을 보내고, 새해맞이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은 3% 유능한 두뇌가 미국을 이끌고 있다 한다. 부정부패는 어느 시대이든 만연하지만 20%의 옳고 바른 생각이 이 시대를 이끌어 간다 했다. 20%에 포함되는 올바른 가족으로 살아가려 하지만 불시에 다가서는 산 같은 장벽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서 일상 스피드가 제한받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면서 개인에게 주어지는 산이란 존재가 물질만능주의 시대의 자화상이 되어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예고 없는 고난의 골짜기를 건너야 하는 일을 만나기도 한다. 자녀 문제, 건강 문제, 정신적이나 기능 장애 문제까지, 괴로움과 재난, 고초의 가시밭길을 극복하고 이겨내며 살아왔다. 임인년 한해도 혼자가 아닌 함께해온 삶이었기에 생에 끼어드는 골짜기나 큰 산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라 포기하지 않으며 다시금 회복 기회를 붙들고 한계를 극복해왔다.
일찍이 인생을 자기와의 싸움이라 했던가. 산책길에서 종종 만나는 일이다. 소나무 등걸 위를 오르고 있는 개미가 더는 갈 길이 막혀버린 것 같은데도 멈추지 않고 이리 저리 맴돌면서 위험해 보이는 골을 찾아 계속 거친 나무를 오르는 모습을 보곤 한다. 인생살이와 무에 그리 다를까 싶다. 일생을 두고 새해를 맞고 사계절을 떠나 보낸다. 모진 추위가 지나면 봄이 가까워지고 꽃이 만개했는가 하면 뜨거운 여름이, 가을이 다 내려놓고 떠난 자리에 겨울이 들어서기 무섭게 묵은 해와 새해가 비껴가는 석별과 해후의 간극이 소란스럽게 연출되고 있다.
온 가족이 한해를 무사히 지나왔음을 먼저 천지의 주재이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게 된다. 어찌 우리 능력만으로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미처 마무리 하지 못한 일, 처음 계획과 거리가 멀어버린 일이며, 시작과 달리 서운함만 남겨진 관계, 감사를 잊었던 일들이며, 꼭 찾아뵈어야 했던 분들이 생각나는 세모를 맞았다. 괜스레 분주해지고 서성이게 되지만 생각해보면 정직하고 야무진 아름다운 매듭을 지을 수 있는 귀하고 소중한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유능한 생활인은 삶의 우선 순위를 지혜롭게 정립하기 위한 스케줄링 처리와 위험 요인 정리 수순에 우선 집중적으로 시간을 할애한다 했다.
후회 없는 삶의 백서를 만들기에는 그리 넉넉하지 않은 시간임을 간파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무슨 일에서나 가장 적절한 정점을 파악해야 한다. 소중한 시점인데 귀하고 값진 순간을 넉넉하다고 방심하는 순간 실상은 그다지 넉넉한 시간이 아님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지금 여기 세모 절기가 최상의 적기일 것 같다. 차분한 보살핌으로 옛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하는 길목에서 행복한 배웅이 되어지기를 소망 드린다.
‘행복한 아침’ 창을 통해 만나 주시는 독자님들께 머리숙여 깊은 감사의 마음을 올려 드립니다. 새해에는 매일매일의 아침이 행복한 아침맞이가 되어지시기를 소원드립니다. 한국일보를 만들어 가시는 제위 분들 가정 마다 행복한 새해가 열리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귀하신 모든 분들 덕분에 2022 한 해도 행복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