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자(시인 수필가)
시월로 접어들자 일조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산뜻한 가을 기온이 옷깃을 여미게 하더니 노을을 만나는 시간도 앞당겨졌다. 얼마만인가 땅거미가 거뭇거뭇한 저녁 무렵,붉음이 넘쳐나는 노을 바다를 만났다. 고층 아파트에서 바라 보는 낙조풍경이 가히 장관을 이루고 있다. 도심 빌딩 숲 사이로 하늘이 피치 골드 빛으로 물들고, 빌딩 창문들이 작은 불꽃처럼 노을 빛을 반사하며 노을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켜준다. 단순한 일몰이 아닌 도시 전체가 장미 빛에, 보라 빛까지 덧댄 아름다운 노을이 거대한 무드 같다. 해 그름 일몰은 도심으로 찾아 들기도 하고 지평선이나 숲에 잠겨 들기도 하면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보는 이들의 넋을 잃게 만든다. 붉게 물든 노을 바다는 감동과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하루를 직조해 낸 도시를 조명하듯 노을 여운이 잔잔하게 번지고 있다. 석양과 마주 할 때면 조금은 적적하고 쓸쓸한 흐름이지만 담백함으로 남은 시간을 보듬으라는 타이름을 듣는다. 흘러가지도 않으며 지워지지도 않으려는 듯 저녁노을은 결 따라 황홀함을 펼쳐내고 있다. 낮 동안 태양이 뜨겁고 붉을수록 노을은 더 붉고 황홀하다. 활화산처럼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도 언뜻 보이지만 느긋함과 어질고 너그러운 지혜가 고여 있음도 보인다. 수려한 빛 부심을 남기고 온몸을 빛무늬로 물들인다. 황혼이 스러지는 시간이면 해 넘이 고달픔이 화선지 색감처럼 번져난다. 언젠가 황혼 녘 낙조를 응시하다 언뜻 눈물이 맺힐 때가 있었다.
질펀한 붉음이 번져나고 노을 빛살이 도심을 물들이면 가슴을 치받는 뭉클함이 이는 것 또한 하루를 다한 햇살의 고달픈 여정 때문일 게다. 어스름 어둠 따라 서서히 기우는 낙조로 하여 감성이 깊어지는 것은 묵은 낙엽이 쌓이듯 긴 시간이 고인 불가사의의 내밀한 해우인 걸까. 무어라 이름 할 수 없는 은은한 감성의 고임은 어쩌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만다. 해서 저녁 노을은 잠시 머물다 어둠 속으로 스러지지만, 강렬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겨지나 보다.
노을은 은밀한 음정으로 색감 움직임을 연주해내고 있다. 서곡이 있고, 불타는 기복이 있고 마지막을 아우르는 긴 여음이 있다. 서곡을 연주했던 유년의 여림이 준비되고 열정으로 생을 태워보려 했던 뜨거운 젊음의 시간들, 노정의 언덕길을 더듬어야 하는 황혼 앞에 서 있는 마지막 엔딩까지, 대 서곡을 완벽히 연주해 내고 있다. 선홍의 노을도 보라 빛 노을도 때로는 금새 지워질 것 같은 여린 노을도 같은 하루를 쏟아 부은 아리아 후주 곡 대목이다. 노을은 이렇게 시가 있고 선율이 있는 하늘 캠퍼스에 장대한 질감의 유화를 그려내고 있다. 최선을 다한 생의 노을 또한 아름다울 수 밖에 없음이다. 누구에게나.
하루를 다한 뒷모습에는 남겨진 색채로 하여 더 곱고 심오하고 순일 한, 나직한 평온이 남겨져 있다. 노을의 마지막이 아름다운 까닭은 어둠에 굴복하는 것이 아닌 어둠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초연함 때문일 것이다. 뜨겁게 타오른 뒤에 찾아 드는 고요로운 퇴장은 사라지는 것이 아닌 완성되어 가는 열정의 끝자락을 목격하게 해준다. 석양이 물들지 않는 다면 푸른 새벽을 기대할 수 없음을 선명히 일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심포니의 마지막 악장이 끝나 듯 노을도 마지막 여운을 거두어 들인다. 여린 어둠이 조심스레 내려 앉는다.
설렘 같기도 하고 물결소리 같기도 한 저녁 노을은 분주했던 하루를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마무리하게 해준다. 맑게 개인 날보다 흐린 날이 많았던 인생길에서 석양의 아름다움으로 위로를 얻으며 여기까지 당도했다. 하늘 궁창의 낙조와 생의 낙조가 어우러지는 고즈넉한 만남 앞에 어쩌지 못할 그 어우러짐의 아름다운 까닭을 묵상해 본다. 생의 덧 없음을, 생의 석양을 어떻게 갈무리 해야 할지를 알 것 같기도 하다. 하루를 다하느라 지쳐버린 사람사는 풍경을 이토록 장엄한 풍광으로 물들게 해 주다니. 노을 곁에서 시간의 반증을 본다. 노을 곁에서 응축된 생의 여로를 본다. 노을 곁에서 낙조와 노구의 아낙과의 만남을 지그시 숨 죽이며 바라 본다.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사랑의 마음과 따뜻한 배려가 싹틀 무렵](/image/297518/75_75.webp)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9)](/image/297386/75_75.webp)
![[삶과 생각] 처참하고 비참한 천재와 인재](/image/297680/75_75.webp)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으로 하수 역류까지 보상될까?](/image/297636/75_75.web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