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코스모스의 계절에 묵상하는 영적 중생과 참 성전(마태복음Matthew 24:1–2)
윤동주 시인은 그의 수필 〈종시(終始)〉에서 밤열차를 타고 종점으로 달려가며 이런 역설을 묵상했습니다. “종점이 시점이 된다 / 시점이 종점이 된다 / 이제 나는 곧 종시를 바꿔야 한다… 도착해야 할 시대의 정거장이 있다면 더 좋다.”
인간의 눈에는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절망의 ‘종점(終點)’의 순간에 도리어 새로운 생명의 길이 열리는 ‘시점(始點)’이 탄생한다는 고백입니다. 복음은 바로 이 종시의 신비 위에 서 있습니다.
1. 마사다와 통곡의 벽: 인간 역사의 종점(終點)
사해 서쪽 광야의 가파른 절벽 위에 서 있는 ‘마사다(Masada)’는 히브리어로 ‘요새(Fortress)’나 ‘산성’을 의미합니다. 지형적으로 사방이 막힌 천혜의 철옹성(鐵甕城)이었던 마사다는, 로마 제국의 칼날 앞에 맞서 끝까지 항전하다 장렬하게 스러져간 유대인들의 아픈 역사적 종점과도 같은 현장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는 마사다가 함락되지 않는다(Never again shall Masada fall)”라는 구호로 민족적 정체성을 다집니다.
철옹성 같던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국가적 종말이 찾아왔을 때, 유대인들에게 마사다의 비극과 성전의 서쪽 외벽인 ‘통곡의 벽(The Western Wall)’은 절망과 눈물의 종점(終點)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예언하셨고, 실제로 로마군에 의해 성전은 처참하게 파괴되어 통곡의 벽만이 남겨졌습니다.
2. 참 성전이신 그리스도: 영원한 구원의 시점(始點)
그러나 윤동주 시인의 고백처럼 종점이 곧 시점이 되듯, 통곡의 벽은 이스라엘의 무너진 성전의 종점인 동시에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는 영적 시점(始點)이 됩니다.
만약 그곳에서 흘리는 눈물이 과거의 상처에 머물거나 눈에 보이는 건물 성전의 회복만을 갈구한다면, 그것은 아직 참된 성전의 실체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건물 성전의 파괴(終點)는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참 성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영원한 구원의 시점(始點)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아픔의 현장을 ‘무너짐의 끝’이 아닌 ‘주님을 새로 바라보는 출발점’으로 재해석하는 안목, 그것이 바로 성도가 가져야 할 참된 신앙관이자 영적 통찰력입니다.
3. 코스모스와 예수 그리스도: 믿음의 중생(新生)
가을 들녘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코스모스(Cosmos)는 계절의 종시(終始)를 보여주는 자연의 은유입니다. 마치 계절의 종점을 향해 달리는 듯 보이지만, 이는 도리어 성숙한 새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시점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코스모스’라는 단어가 희랍어로 ‘질서’와 ‘아름다운 조화’, 그리고 ‘우주’를 뜻한다는 점입니다. 무질서하고 혼돈스러운(Chaos) 인간의 역사와 절망의 종점 위에, 하나님께서는 참된 질서요 우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계절의 종시 속에서 코스모스가 피어나듯,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죽음의 종점에서 ‘부활과 중생(거듭남)’이라는 영원한 참 생명의 시점이 시작된 것입니다.
육의 사람, 건물의 성전에 갇힌 신앙은 마사다의 폐허에서 통곡하며 끝납니다. 그러나 영의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거듭남)을 경험한 성도는 내 삶의 모든 무너진 자리와 고난의 종점을 도리어 주님의 은혜가 시작되는 소망의 시점으로 선포하게 됩니다.
[결단의 기도]
알파와 오메가, 역사의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종시(終始)의 하나님 아버지!
마사다의 비극과 통곡의 벽이라는 역사적 절망 뒤에 숨겨진 참 성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영안을 열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무너질 눈앞의 건물이나 세상의 요새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과 교회의 참된 실체되심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가을 바람에 휘날리는 코스모스 꽃잎을 보며, 우주의 주인이시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거듭나게(중생) 하신 그리스도의 계절을 묵상합니다. 지금 당하는 삶의 고난과 십자가라는 종점이 장차 누릴 부활과 생명의 영광이라는 새로운 시점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확실히 믿게 하옵소서.
오늘도 묵은 허물을 벗고 예수 소망, 예수 생명, 예수 사랑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거듭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종시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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