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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저 강이 끝나는 곳은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6-07-13 10:24:30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저 강이 끝나는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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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나이가 들면서 내 마음을 붙드는 풍경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소리 없이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이다. 가끔 흐르는 물줄기가 보고 싶을 때면, 차타후치 강이 발아래로 보이는 작은 커피숍을 찾는다.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고 있으면 늘 ‘상선약수‘라는 말이 떠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뜻,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결코 공을 내세우지 않고, 순리에 따라 낮은 곳으로 기꺼이 흐른다. 젊은 날에는 이 겸손함의 깊이를 알지 못했다. 내가 가진 생각과 기준만 정답인 양 거세게 소리 내며 살아온 시간들이 이제야 부끄럽게 돌아 보인다.

 

돌이켜보면 젊은 날의 삶은 거친 계곡을 거침없이 흐르는 급류 같았다. 새벽이슬을 밟으며 일터로 향하고, 늦은 저녁 기진한 몸으로 돌아와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만지며 다시 내일을 준비하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더 빨리, 더 가져야 한다는 조바심 속에서 치열하게 일터를 일구었다. 거친 물살을 헤쳐 나가는 동안에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볼 겨를조차 없었다. 내일을 향해 질주하는 것만이 미래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던, 참 날카롭고 뜨겁던 청춘이었다.

 

강물은 바위를 만나면 굽이쳐 돌고, 웅덩이를 만나면 그곳을 다 채우고서야 다시 흐른다. 세월이라는 물길을 따라 굽이굽이 돌다 보니, 내 삶의 급류도 어느새 잔잔한 흐름으로 바뀌었음을 깨닫는다. 요란하던 물소리는 잦아들었고 강폭은 한없이 넓어졌다. 수면은 비로소 하늘의 구름과 주변의 푸른 풍경을 온전히 비출 만큼 고요하다. 이 나이가 되니 문득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강물은 어디서 어떻게 끝이 날까.’

 

강물의 수명은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서 끝난다. 푸른 바다가 시작되는 그곳을 강의 ‘끝’이라 부른다. 바다에 닿는 순간 강물은 제 이름을 내려놓고 거대한 바다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합일이다. 바다에 이른 물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다. 그곳에서 거대한 파도로 춤추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 비가 되며, 또다시 대지를 적시는 영원한 순환을 시작한다. 

 

젊은 시절에는 노년이란 삶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드는 상실의 과정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막상 이 나이에 서고 보니, 강물이 끝자락에서 폭을 한껏 넓히듯 내 삶의 지평이 넉넉해지는 것을 느낀다. 남의 슬픔과 기쁨도 어렴풋하게 보인다. 그래서 인가, 내 아픔도 줄었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다투지 않고 흐르는 물의 성정을 닮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내 안의 날카롭던 모서리들이 오랜 세월 흐르는 물살에 깎이고 다듬어져 둥근 자갈이 된 덕분이리라.

 

육신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결국 떠나야 하는 경계선에 다다르겠지만, 그것이 허무한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강물들이 모여 마침내 거대한 바다를 이루듯, 내가 살아오며 남긴 따뜻한 말 한마디, 누군가에게 베푼 소박한 사랑의 기억, 치열하게 고민하며 쌓아 올린 삶의 흔적들은 내가 떠난 뒤에도 남은 이들의 마음에 고스란히 스며들 것이다. 세상의 도도한 흐름 속에 밀물과 썰물처럼 끊임없이 살아 숨 쉬며, 그들의 기억 속에서 아름답게 반짝이리라 믿는다.

 

오늘도 나는 차타후치 강가의 카페 창가에서 묵묵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본다. 문득 지난날 일터에서 마주했던, 삶의 마지막 경계선에서 묵묵히 밤을 지새우던 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부디 그분들의 남은 걸음 역시 외롭거나 허무하지 않기를, 저 강물처럼 평화롭게 바다에 닿기를, 내 삶의 남은 여정도 더 넓고 깊은 마음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한다. 저 푸른 바다를 향해, 가장 평온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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