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수필]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것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6-06-22 10:20:13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것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이른 새벽, 카메라를 챙겨 들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아직 컴컴한 하늘에는 새벽달이 흐릿하게 걸려 있고, 며칠간 세차게 불었던 바람 탓인지 나뭇가지 위에 막 피어나던 꽃들은 자취를 감춘 뒤다. 목적지는 분지처럼 아늑하게 내려앉은 축구장이 있는 눈데이 파크(Noonday Park). 오래전부터 마음먹었던 길이다. 지난밤 일기예보에는 안개 소식이 없었지만, 왠지 그곳에 가면 새벽안개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기어이 안개를 만나고야 말겠다는 막연한 기대와 예감 하나에 의지해 무작정 차를 달린다. 공원 입구에 도착해 사방을 둘러보니 예감은 보기 좋게 적중해 있다. 언덕 밑으로 길게 뻗은 산책로 끝자락, 넓은 축구장 위로 새벽안개가 하얀 너울처럼 낮게 일렁인다. 사방을 메운 옅은 어둠과 정적 속에 순간 으스스한 한기가 돋아 몸이 움츠러든다. 그러나 신비로운 풍경을 카메라 프레임에 담고 싶다는 마음이 서늘한 두려움을 이겨낸다.

 

사진기를 꺼내 들고 조심스럽게 산책로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막상 삼각대를 세우고 셔터를 누르기 시작하지만, 안개의 본연을 포착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사방을 돌아보며 수십 번을 찍고 또 찍어보아도, 유명작가의 화보집에서 보았던 그 몽환적인 자태는 좀체 잡히지 않는다. 더 가까이 다가가면 안개의 속살을 볼 수 있을까 싶어, 안개 속으로 가만히 걸어 들어가 본다.

 

온통 안개에 휩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막상 그 안에 서니 발밑의 푸른 잔디가 오히려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본다. 안개는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있다. 오히려 조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산책로가 짙은 안개에 싸여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안개는 어쩌면, 멀리서 바라볼 때만 아름다운 존재로 머무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사람이 살아가는 일도 이 새벽안개 속을 걷는 것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스친다. 유명 작가의 멋진 안개 사진에 매료되었던 것처럼, 어쩌면 나 또한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며 그것이 인생의 정답인 양 쫓아온 것은 아닐까. 저 멀리 있는 신기루에 닿으려 스스로를 다그치느라, 정작 지금 내가 딛고 선 발밑의 소박하고 푸른 행복은 보지 못한 채 지나쳐온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생각해보면 그저 한 편의 소박한 사랑 이야기와 따스한 가정을 이룬 것 외에는 세상에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아등바등 무엇을 더 움켜쥐려 했던 것일까. 온 힘을 다해 치열하게 살았던 오늘이 눈 깜짝할 사이에 어제가 되어버리듯, 애써 잡으려 하는 거창한 꿈들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소리 없이 바스러지는 안개처럼 저만치 멀어질 뿐인데.

 

어느새 소나무 숲 너머로 동녘 하늘이 분홍빛 아침노을로 물들기 시작한다. 안개가 걷히면 가려졌던 풍경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듯, 삶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지혜의 순간도 내게 찾아오리라 믿는다. 거창한 삶을 성취하지 못했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허물이 되겠는가. 밤새 대지 위에 조용히 고여 있다가, 아침 햇살이 비추면 아무런 미련도 없이 사라지는 새벽안개처럼 사는 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이 완연히 밝아온다. 기대했던 '작품'은 건지지 못한 채 안개는 자취 없이 사라지지만, 그 빈자리에서 나는 삶의 진짜 의미를 받아든다. 여전히 서툰 걸음으로 후회를 남기며 걷는 인생길이겠지만, 사랑할 수 있고 또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푸른 잔디처럼 내 곁에 존재하기에. 이 세상에 살아 숨 쉰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할 수 있는, 눈부신 아침이다.

 

 

 

댓글 0개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법률칼럼] 투표 안내문이 왔다고 투표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케빈 김 법무사 11월 3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조지아에서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선거철이면 우편함에는 각종 안내문이 쌓이고, 휴대전화에는 참여를 권하는 문자가 이어진다. 그러

[행복한 아침] 노을 곁에서

김 정자(시인 수필가)    시월로 접어들자 일조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산뜻한 가을 기온이 옷깃을 여미게 하더니 노을을 만나는 시간도 앞당겨졌다. 얼마만인가 땅거미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사랑의 마음과 따뜻한 배려가 싹틀 무렵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사랑의 마음과 따뜻한 배려가 싹틀 무렵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자유와 평등과 행복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 나라에서도 스스로 고립과 소외를 선택한 노숙자의 삶의 현실에서 많은 것을 생각한다. 사회 복지정책에 의

[신앙칼럼] 하나님 나라의 서막: 〈형상〉과 〈영광〉 (Kingdom Prologue: Image and Glory)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신명기Deuteronomy 6:4-5 1. 태고(太古)와 현하(現下), 그리고 영원불변의 현상인류의 역사는 시공간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9)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9)

연방 보조금(SSI) 수급 자격을 지키는 변동 사항 신고와 오지급 방지 가이드· 부제: 소득·자산·주거 변경의 '익월 10일' 신고 원칙과 과다지급 환수·페널티 예방법·공식 발표일

[추억의 아름다운 시] 행복

유치환 시인 사랑하는 것은사랑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제각기

[삶과 생각]  처참하고 비참한 천재와 인재
[삶과 생각] 처참하고 비참한 천재와 인재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성경의 기록과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천재(天災)와 인재(人災)는 정도의 차이만 다를 뿐 계속되어 왔고 현재도 이어지며 미래에도 계속될

[삶이 머무는 뜰] 당신은 끝내 행복한 나그네

조연혜 수필가 어떤 활기찬 것들은 치열함 속에서 비로소 생기를 얻는다. 관광객과 시민 모두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시애틀의 영혼’이라 불리는 파이크플레이스마켓. 미국에서 가장 오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으로 하수 역류까지 보상될까?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으로 하수 역류까지 보상될까?

최선호 보험전문인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우리는 이 단순한 원리를 이용해 집 안의 수도와 배수시설을 설계한다. 싱크대에서 사용한 물도, 샤워실의 물도, 세탁기의 물

[애틀랜타 칼럼] 건전한 불만은 세상을 이끄는 힘

이용희 목사 우리는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그 일에서 만족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연스럽게 일에 적응하고 자신의 인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만족이란 자신이 원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