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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그, 모란시장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9-27 18:13:24

시론,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모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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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단편집 ‘대범한 밥상’에 나오는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에 성남 모란시장 근방에서 광주리 장사를 했다는 성남댁 할머니가 나온다. 며느리 진태엄마는 성남댁에게 중풍 들린 홀시아버지 시중을 들어주면 시아버지 명의의 열 세평 아파트 한 채를 준다고 약속한다.

허구헌날 똥치고 씻기느라 공깃돌 다루듯 하던 영감님이 죽자 며느리는 성남댁을 얼씬도 못하게 한다. 진태엄마는 중풍이 도져 아들네와 집을 합칠 때 그 아파트를 후딱 몰래 팔아치워 자신이 챙겼다. 며느리와 둘이서 맺은 약속을 철석같이 믿어온 성남댁은 상가의 부엌에서 찧고 까부는 여편네들의 해괴한 소문 중심에 진태엄마의 음모가 있음을 알게된다.

살아생전 영감은 성남댁을 믿음직한 친구로 대했고 생활비를 한푼이라도 아껴 성남댁에게 주었다. 이 돈을 모아 전대에 꼭꼭 싸매고 아들네로 향하는 성남댁은 아들에게 다 주진 말고 조금 떼어냈다가 다시 장사를 해야지 한다.

‘내 모가지에 마늘 열 접이면 고작인 것을 감히 아파트 한 채를 이고 가려 했으니, 사람이 분수를 모르면 죄를 받는다는데, 그렇지만 아파트 한 채를 지 알고 내 알고 하늘까지 알건만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사람을 속여넘길 수가 있담. 천벌을 받을..’ 하며 욕을 하려다가 대신 가래침을 칵 뱉고 포기한다. 그동안 참은 아들, 며느리, 손주새끼 보고싶은 마음은 걸음을 앞질러 애꿎은 엉덩이짓만 한층 요란하게 집으로 향한다.

성남댁은 돈 없고 가난하여 진태엄마같은 가진 자의 몰염치, 몰상식으로 무시당하지만 죽음을 앞둔 영감님 곁을 연민과 의리로 지켰다. 성남댁은 인간됨의 기본을 보여주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분당의 그, 모란시장을 가보았다.

모란민속5일장은 성남시 중원구 둔촌대로에 위치하며 매월 4, 9, 14, 19, 24, 29일에 열린다. 한달에 6번 정도 열리는 것이다. 모란시장의 시초는 홀어머니를 평양에 두고 남하한 김창숙씨가 지금의 모란시장 주변을 개간하여 그 지명을 그리운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담아 평양의 모란봉을 연상하여 ‘모란시장’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서울 동남쪽 가락동과 성남시, 경기도 일원의 주민들이 농수산물, 특히 토산품이나 특산물을 내어다 팔면서 그것을 수집하고 선매하는 상인들이 모여들어 상거래를 했다. 도시화의 진전과 함께 급속 성장하여 오늘날 전국 최대 규모의 민속시장이다. 1990년 지금의 장터로 이전하여 현재 점포 950여 개가 있으며 장이 서지 않는 날은 공영주차장으로 사용된다.

가설 점포는 울긋불긋한 파라솔이나 천막 아래에 장이 펼쳐져 있는데 농기구용품, 의류와 신발, 생활용품부터 시작해서 각종 먹거리가 다양하다. 들기름, 참기름은 물론 곤드레, 취나물, 부지갱이, 어수리 국산 산나물, 통마늘, 결명차 등을 판다. 생물과 건생선류, 멸치, 다시마, 시골된장과 고추장, 직접 공장에서 뽑아낸 국수도 있다.

무릎신경통 연골 고관절에 좋다는 우슬, 죽어가는 간을 살린다는 헛개열매, 피부노화 장운동 피로회복에 좋다는 홍화씨, 원기 양기 증강 위장질환에 효능 있다는 마 등을 설명한 문구가 재미있다. 찰기장쌀, 햇현미, 햇차조, 햇찰수수 등 모든 곡식류가 푸대 자루나 대형 고무대야에 담겨있고 됫박(보통 1되 5,000원)으로 재어 담아준다.

모란시장을 가면서 눈에 들어온 40대 여성이 있다. 과일노점상에서 물렁한 복숭아를 사려고 하는데 딱딱한 복숭아뿐이었다. 앞에 서있던 40대 여성이 자기네 가게로 따라오라고 해서 갔는데 마지막 물렁한 복숭아를 다른 손님이 사고 있었다. 무표정하지만 순박한 그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올라오는데 목에 두른 수건이 그 땀을 흡수하고 있다. 그렇게 큰 땀방울은 처음 보았다.

한국에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는 5일 후 모란시장에 다시 갔을 때 그녀가 파는 것은 뭐든지 팔아주고 싶었다. 몇 번이나 헤매다가 마침내 그 점포를 찾았다. 복숭아를 이미 샀으니 골든키위를 달라고 하면서 보니 이날도 굵은 땀방울이 얼굴 전체에서 쉴새없이 솟아오르고 있다.

이를 노동의 신성함이라 하면 욕이다. 억척같은 삶에서 일종의 숭고함이 느껴진다. 자신의 척박한 삶을 그대로 순종하는,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의 성남댁 할머니가 떠올랐다.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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