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건물 44%가 ‘깡통’
만기 대출 ‘부실화’ 위험
지난해 말 LA 다운타운에서 3번째로 규모가 큰 에이온센터가 이전 판매가의 45%에 불과한 1억4,780만달러에 처분됐다. 2014년 매입 가격인 2억6,850만달러에 거의 절반 가까이 폭락한 가격에 판매된 에이온센터의 사례는 LA 오피스 부동산의 침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LA 상업용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LA 다운타운의 공실률이 30%로 높아 그만큼 오피스 건물의 가치는 폭락했다”고 말했다.
뉴욕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맨해튼에 있는 22층짜리 오피스 건물인 플랫 아이언은 현재 완전히 비어 있다. 지난 2019년 마지막 입주 업체가 나간 뒤 4년 가까이 비어 있다. 뉴욕의 한 부동산 업체 대표는 “몇 년 전만 해도 직장인들로 가득 찼던 사무실이 지금은 텅텅 비어 있다”며 “남아 있는 업체들도 적은 직원들만 출근해 있는 ‘좀비 오피스’로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아 있는 것”이라고 했다.
오피스 부동산 시장의 침체 현상은 LA에서 뉴욕에 이르기까지 미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오피스 종말’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오피스 부동산의 공실률이 사상 최고로 치솟고 있는 데다 고금리 여파에 재택근무 확산으로 오피스 수요가 쪼그라들면서 가격이 급락하고 있어서다. 문제는 사무실 공간이 채워지지 않고 있는 ‘좀비 오피스’와 가격 급락으로 대출금 상환이 어려워진 ‘깡통 오피스’가 늘면서 오피스 부동산 대출이 대거 부실화할 것이란 공포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와 부동산 전문가들은 사무실 부동산 수요가 회복될 가능성은 낮고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속적으로 미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혀 왔던 오피스 부동산의 침체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오피스 건물의 가치 하락하면서부터다. 상업용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그린 스트리트에 따르면 전체 오피스 부동산 가격이 고점이었던 2022년에 비해 35%나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에 사무실 복귀마저 지진부진해지면서 오피스 수요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수요 감소와 가치 하락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오피스 부동산의 또 다른 위기는 만기일 다가오는 대출이다. 부동산 데이터 제공업체 트렙은 올해 미국에서 만기가 돌아오는 오피스 부동산 대출이 5,440억달러로 집계했다. 또한 오피스를 포함한 상업용 부동산 대출 규모는 2조6,000억달러인데 이중 향후 5년 내 만기되는 대출금이 1조4,000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대출금 상환이 녹록해 보이지는 않는다. 재택근무 확산이 지속되면서 사무실 건물이 직장인들도 채워지지 않는 소위 ‘좀비 오피스’가 여전히 상존하다 보니 건물을 팔아도 대출금을 갚을 수도 없는 ‘깡통 오피스’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경제연구소(NBER)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14%, 오피스 부동산 대출의 44%가 이런 ‘깡통 건물’이라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트렙은 대출 부실의 전조로 대출 상환 연체가 급증해 올해 말에는 10~12%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대출 부실로 인한 금융권의 위기 공포가 퍼지기 시작한 대표적인 사례가 지역은행인 뉴욕커뮤니티뱅콥(NYCB)이다. NYCB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 손실 등으로 지난해 4분기 순손실을 기록한 후 주가 하락에 신용 등급 강등 등의 위기를 겪었다. 주가도 지난 8일 기준으로 37%나 넘게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오피스 부동산 침체가 당장 미국 금융 시스템의 위기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피스 부동산에 대한 대출 부실의 영향권에 놓일 은행은 전체 4,500개 은행에서 300여개로 추산되고 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CBS의 ‘60분’(60 Minutes)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전조 현상은 아니다”라며 “대형 은행은 위험 관리가 가능하지만,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많은 중소형 지역 은행의 일부는 문을 닫거나 다른 은행에 인수될 것”이라고 말했다.
<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