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트 컨트롤 테넌트 퇴거
렌트 상승·재개발 등 ‘변질’
“집을 비워 주는 대신 2만2,000달러를 보상금으로 줄 테니 고려해 보라.” 하이랜드 팍의 렌트 컨트롤 임대 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애나 로페즈가 지난 2022년 새 주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제안이었다. 임대 주택을 헐고 대신 다가구 아파트 건설 계획을 갖고 있는 새 주인은 기존 세입자들을 문제 없이 내보내기 위해 ‘바이아웃’을 제안했던 것이다.
바이아웃은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대신 퇴거를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로페즈는 집 주인의 제안을 거절하고 2년 가까이 버텼다. 이미 이웃 세입자는 바이아웃을 받고 떠난 상태다. 최근 들어 집 주인의 바이아웃 제안 금액은 10만달러까지 올랐지만 로페즈는 요지부동이다. 이유는 바이아웃의 뭉칫돈을 받더라도 주변 아파트의 비싼 렌트비를 감당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로페즈는 “월 800달러의 렌트비 때문에 20년 넘게 살아 온 임대 주택”이라며 “바이아웃을 받더라도 세금을 내고 나면 1달에 2,000달러가 넘는 렌트비를 부담하면서 살기에는 부족해 나가지 않고 끝까지 버티기로 했다”고 말했다.
LA 지역에서 바이아웃이 급증하고 있지만 퇴거에 따른 지원금이 LA 지역의 높은 렌트비를 포함한 주거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UCLA 로스쿨의 개리 블라이 교수는 “퇴거 지원금이 얼핏 큰 금액으로 보이지만 자유롭게 렌트비를 올릴 수 있는 공개 임대 시장을 염두해야 한다”며 “바이아웃 뭉칫돈은 사실상 세입자들을 상상 이상의 끔찍한 주거 환경으로 내몰고 있다”고 경고했다.
세입자는 바이아웃을 반드시 수락할 필요는 없으며 계속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돈과 집 열쇠를 교환한다는 의미로 ‘캐시 포 키’(Cash for Key)라고도 불리는 바이아웃이 한인타운을 포함해 LA 지역에서 렌트 컨트롤 아파트 소유주들이 기존 세입자들에 대한 법적 퇴거 절차 대신 대체 퇴거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그 수가 급증하고 (본보 1월10일자 A2면) 있는 가운데 바이아웃의 퇴거 지원금이 LA의 높은 주거비를 따라 잡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이를 선택한 저소득 세입자들의 주거 환경이 위협 받고 있다고 16일 LA타임스(LAT)가 보도했다.
LAT에 따르면 지난주 케네스 메지아 LA시 회계감사관실은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LA시에 보고된 바이아웃 합의 건수는 4,869건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LA 지역에서 바이아웃이 성행하고 있는 것은 법적 절차에 따라 기존 세입자를 퇴거시키는 것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고 소요 시간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임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건물주들이 재건축을 위해 바이아웃을 기존 세입자의 퇴거 수단으로 손쉽게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바이아웃이 건물주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때로는 은밀하게 사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어서 보고된 바이아웃 건수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LAT는 지적했다.
문제는 바이아웃으로 지급되는 퇴거 보상금이 LA 지역의 높은 임대료와 주거 관련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LA시 자료에 따르면 바이아웃의 평균 보상금 규모는 2만4,704달러다. 케네스 메지아 LA시 회계감사관은 “바이아웃 보상금으로 LA시에서 장기 임대 주거 환경을 영위하는 데는 너무 부족해 바이아웃 보상금에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LAT는 “일부 건물주들이 바이아웃을 거부하는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직간접으로 괴롭히거나 심리적 압박을 주는 사례들도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우려와 달리 건물주들은 바이아웃이 세입자와 ‘윈-윈’할 수 있는 유용한 제도라며 사뭇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퇴거 대가로 세입자들은 금전적 보상을 받고 건물주들은 재개발이나 신규 세입자 확보를 통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