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만 30만건 피해
사기범 계좌만 250만개
경제에서 주요 결제 수단인 종이 체크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종이 체크의 도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사기 범죄 수단에 악용되면서부터다.
시카고에서 소규모 출판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는 팸 번스도 종이 체크 사기 범죄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각종 경비를 결제하기 위해 사용했던 종이 체크 중 1장이 분실됐고 지급자 이름이 위조됐다. 7,200달러의 거금이 은행 계좌에서 빠져나간 것을 확인했을 땐 이미 상황은 종료된 상태였다. 번스는 “은행에 체크 사기를 신고했지만 사고가 난 지 2달이 지났지만 아직 ‘조사 중’이라는 답만 듣고 있다”며 “은행 잔고를 다 털려서 인쇄기 할부금을 비롯해 직원 급여와 세금을 내지 못하고 발만 구르고 있다”고 했다. 종이 체크로 각종 경비를 결제했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불행의 단초가 되리라고 번스는 생각하지 못했다. 종이 체크가 분실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9일 뉴욕타임스(NYT)는 가정이나 사업체에서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종이 체크가 사기 범죄에 빌미가 되면서 사기 범죄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종이 체크 사기 범죄는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연방 재무부의 자금 세탁 및 제재 감시 기관인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에 따르면 팬데믹 첫해인 2020년에만 종이 체크 관련 사기 범죄 신고 수는 29만9,020건으로 전년에 비해 161%나 급등했다.
특히 올해 들어서 종이 체크 사기 범죄는 더욱 늘어나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FinCEN의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올해 종이 체크 관련 사기 범죄 피해 신고는 54만건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전망치대로라면 사상 최고치로 전년 대비 7%, 2021년에 비해 2배에 해당되는 수치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소비자 신원 정보 제공업체 소큐어에 따르면 사기범들에 의해 개설된 가공의 은행 계좌는 전 세계에 250만개에 육박할 정도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NYT에 따르면 종이 체크 사기 범죄는 종이 체크의 절도에서 시작된다. 사기범들은 종이 체크가 들어 있는 우체통이나 심지어 우체국 내부에서 종이 체크를 훔쳐 지불처와 지불 금액 등을 정교하게 위조해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수법을 사용한다.
최근 들어 종이 체크 사기범들은 절도한 종이 체크를 사회관계망(SNS)을 통한 판매에도 나서면서 종이 체크 관련 사기 범죄가 증가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도난 종이 체크의 거래가 이뤄지는 SNS는 텔레그램이다.
조지아 주립대학의 데이비드 마이몬 범죄정의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올해 9월 현재 종이 체크 사기범들이 훔친 9,148장의 종이 체크들이 텔레그램의 80개 방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올해 2월 4,527장의 도난 종이 체크에 비해 거의 5,000장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난 것이다.
금융권들이 종이 체크 위조 방지를 위해 다양한 조치들을 시행하고, 범금융권 차원의 상호협력 관계를 구축해 놓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한 수준에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특히 사기 피해 금액을 되돌려 받기까지 최초 사기 피해 신고 접수 후부터 60일이나 걸려 피해자들의 불편이 크지만 법적 규정이 없이 개선이 요원한 상황이다.
종이 체크 사기 범죄가 급증하고 있지만 종이 체크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들은 1달에 평균 1.5장의 종이 체크를 발행하고 있으며 월 결제 수단 중 3.8%가 종이 체크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