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가뭄’에 강수량 최저
통과가능 선박 절반으로
극심한 가뭄에 따른 수량 부족 문제를 겪는 걸린 파나마 운하에서 통행 가능 선박 수가 감소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포함한 연말 샤핑 시즌에 물동량이 대폭 증가하는 것을 고려하면 화물량 운송 감소로 이어져 ‘화물 대란’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유통 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파나마운하청(ACP)에서 해운업계에 제공한 통지문에 따르면 ACP는 지난 3∼6일 일일 파나마 운하 통행 가능 최대 선박 수를 31대에서 25대로 20% 가까이 축소했다. ACP는 “물 절약 및 보존을 위한 비상 운용에도 운하 유역 강수량 부족에 따른 통행 선박 추가 감소는 불가피하다”며 “모든 조처에도 가툰 호수 수량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가툰 호수 수량은 파나마 운하를 운영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요소다. 해수면과 높이 차이가 있는 운하 특성상 갑문 사이에 물을 채우거나 빼면서 선박을 계단식으로 이동시켜야 하는데, 그 중간에 가툰 호수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가툰 호수 주변은 역대급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다. 10월 강수량의 경우 1950년 이후 최저치(평균 41% 이하)를 기록했다고 파나마 기상청은 전했다.
ACP는 연말을 넘어 내년 초까지 통행 선박 수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강수량 예측 모델상 향후 이 지역에 한동안 비 소식이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통행 대수 축소를 통해 갑문에서 해양으로 빠져나가는 담수(민물) 규모를 줄이겠다는 뜻이다.
ACP는 11월 7∼30일 24대, 12월 1∼31일 22대, 내년 1월 1∼31일 20대로 선박 통행 규모를 차례로 줄일 예정이다. 내년 2월 1일부터는 잠정적으로 18대까지 감소한다. 이는 지난해 12월(37대)과 비교해 반토막 수준이다.
운하 이용 선박의 흘수(물속에 잠긴 선체 깊이) 제한도 44.0피트(13.41m)로 유지한다. 통상적인 파나마 운하 선박 흘수 제한은 50.0피트(15.24m)였다. 흘수 제한은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의 화물량을 결정짓는다. 그 숫자가 낮아지면, 배를 물속에 덜 가라앉혀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전보다 선적량도 줄일 수밖에 없다.
이번 조처로 파나마 운하 주변 병목 현상은 심화할 전망이다. 앞서 흘수 연속 제한이 이뤄지던 8월 평균 운하 갑문 진입 전 대기 시간은 9.8일로, 2021년 동기 대비 약 3배(3.1일)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파나마 당국은 철도와 고속도로 등 대체 운송 수단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또 통행 정체가 대부분 사전에 예약하지 않은 선박에서 발생하는 만큼, 예약 시스템 활용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해상 운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화주와의 계약은 연간 단위로 이뤄지고는 있지만, 내년까지 실제 통과 제한이 이어질 경우엔 추가 운임 부과 등 조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컨테이너 업계는 매출 감소를 예상하며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월스트릿저널(WSJ)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세계 최대선사인 머스크가 1만명을 감원하겠다는 계획을 지난 3일 발표했다.
머스크의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은 최근 매출과 수익이 대폭 하락한 데 따른 대처 차원이다. 머스크의 3분기 해상운송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56%나 급락했다. 지난해 초부터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소비둔화와 항구 적체 해소 등으로 인해 운임 하락이 계속됐다. 이에 따라 올해 3분기의 경우 아시아에서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는 해상운송비가 2022년 초반에 비해 90%나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컨테이너 업계는 코로나19 사태 당시 급등한 수요를 소화하기 위해 화물선 발주를 늘렸기 때문에 해상운임 하락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해상운송 정보업체 제네타의 수석 애널리스트 페터 잔트는 “내년 컨테이너 업계의 공급능력은 6%가량 느는 데 비해 수요는 2% 증가에 그칠 전망”이라면서 “업계 입장에서 내년은 올해보다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