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정책수단으로 부각 정부지출·통화공급 핵심
월스트릿저널(WSJ)이 최근 미국 경제계에서 일고 있는 통화주의 부활 이슈를 6일 조명했다.
통화주의(monetarism)란 정책당국이 경제활동에 관해 쓸 수 있는 수단 중 통화정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주장을 말한다. 이에 대응하는 견해로는 재정정책이 경제활동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는 재정주의가 있다.
WSJ은 통화주의가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RB·연준)의 정책지침에서 폐기된 지 30년 만에 요즘 다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이 때문에 대표적 통화주의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제자들이 기뻐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준은 지난 1979년부터 폴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의 지휘 아래 통화 공급량을 통제하는 데 주력했지만, 점차 통화 가격, 즉 이자율에 집중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1993년에는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의회에서 통화 공급과 인플레이션 사이의 장기적인 관계가 “무너진 것 같다”고 말하면서 연준은 통화 공급과 관련한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이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이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프리드먼은 1970년 “인플레이션은 생산량보다 통화량이 더 빠르게 증가해야만 발생하고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언제 어디서나 화폐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5년간 프리드먼의 주장은 배척되고 그린스펀의 주장이 맞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19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통화 공급과 인플레이션 간에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비상 대응으로 인해 통화공급이 대폭 늘어나고 이는 18개월 뒤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면서 통화주의자들의 주장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됐다 이들은 통화 공급의 둔화가 다시 18개월의 시차를 두고 인플레이션 하락을 불러올 것으로 보고 있다.
유로존과 영국에서도 광의통화(M3) 및 M4를 포함해 통화 공급은 감소추세다.
퍼스트 이글 인베스트먼트의 매튜 맥레넌은 “통화 축소를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통화 정책이 상당히 긴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통화주의자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인플레이션이 높을 때 중요한 것은 통화 공급량이라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이 낮을 때는 통화량과 인플레이션 사이에 연관성이 없지만 고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통화 공급이 거의 완벽한 지표가 된다. M&G 인베스트먼트의 리처드 울노프 펀드매니저는 “돈을 찍어낸 나라들은 인플레이션을 겪은 반면 그러지 않았거나 그럴 수 없었던 국가들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없었다”고 말했다.
통화주의에 반대하는 이들은 경제를 움직이는 개인이나 기업의 의사 결정에서 통화량보다는 화폐 비용, 즉 이자율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은행 대출은 연준이 발행하는 통화에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통화 공급도 연준이 얼마나 많이 찍어내는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이자율에 따른 수요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가의 급격한 상승은 통화 정책 때문만이 아니라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많이 푼 영향도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실제로 연준이 2010년부터 양적완화(QE2) 조치를 통해 통화 공급을 크게 늘렸을 때 학자나 투자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유럽중앙은행(ECB)의 대규모 통화발행도 팬데믹으로 인해 정부 지출이 촉발될 때까지 수년간 인플레이션을 높이는 데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ECB 집행위원회 이사벨 슈나벨 위원은 2020년에 급증한 통화 공급이 다가올 인플레이션의 유용한 지표가 될 수 있겠지만 또한 지금 통화 공급이 줄어드는 것을 과도하게 우려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