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래 최저 수준 기록
원·달러 환율이 9개월만에 1,220원대로 하락했다. 연방준비제도(FRB·연준) 높은 기준 금리 효과가 사라진 것인데 빠르면 하반기에 1,100원대로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경기 경착륙 가능성이 남아 있는 만큼 낙관적으로만 보기 힘들다는 분석도 나온다.
30일(이하 한국시간)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3.9원 내린 달러당 1,227.4원에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이 1,220원대에서 마감한 것은 지난해 4월15일(종가 1,229.6원) 이후 처음이다.
당시 환율은 상승 조짐을 보이다가 연준이 5월4일 ‘빅스텝’(기준금리 0.5% 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서 본격적으로 올라갔다. 이후 하반기 1,400원을 훌쩍 넘던 환율은 올해 들어 급락세를 보이면서 이날 장중 최저치 1,227.10원을 기록해 지난해 최고치(10월 25일·1,444.20원)보다 15%가 떨어졌다.
이후 31일 개장한 서울외환시장에서는 전날 종가 대비 3.4원 오른 1,230.8원 시작돼 오르내림을 이어가고 있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이 FOMC 회의를 앞두고 관망세를 보임에 따라 원·달러 환율도 국내 증시 움직임을 지켜보며 달러당 1,230원 선을 중심으로 등락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원·달러 환율 하락세에서 주목할 점은 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효과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달 31일~2월 1일 일정으로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연다. 여기서 0.25% 포인트 기준 금리 추가 인상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지만 달러는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환율 시장에서 변화가 나타난 것은 금리 인상 폭이 직전 회의에서 ‘자이언트 스텝’(기준 금리 0.75% 포인트)에서 빅스텝으로, 이번에는 ‘베이비 스텝’(0.25% 포인트 인상)으로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다. 빠르면 올해 안에 금리 인하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전망에 환율이 먼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미주 한인들 입장에서는 강달러 프리미엄이 완전히 사라졌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달러 강세에 한국에 여행을 가거나 모국 친지들에게 송금을 하는 것이 비교적 쉬웠지만 이제는 부담이 커진 것이다. 반대로 한국에서 돈을 받아야 하는 유학생, 주재원들은 여유가 생겼다.
전문가들 중에서도 당분간 환율 하락이 이어질 것으로 보는 분석이 많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의 연말 전망치를 기존 104에서 98로 낮췄다. 그만큼 원화는 강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문정희 국민은행 연구원은 “연준이 금리 인상 사이클을 3월에 끝내고 경기 침체가 심하지 않아 성장률이 예상대로 나온다면 환율은 상고하저일 것”이라며 “올해 하단은 1140원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소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도 올해 달러 가치가 추가로 하락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보고서를 지난달 내놓은 바 있다. 블룸버그 보고서는 2023년 미국의 인플레이션 진정으로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중단하고 필요에 따라 금리 인하까지 고려할 경우 달러 지수가 100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달러 지수가 지난 4월 이후 처음으로 100선 아래로 내려갈 경우, 기술적으로 98과 95가 다음 지지선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는 연준이 이번 달 기준금리를 4.25∼4.50%로 0.5%포인트 올릴 당시 제롬 파월 의장이 “물가상승률이 2% 목표치를 향해 지속해서 내려간다고 확신할 때까지 금리 인하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과는 결이 다르다.
또 경기 하강의 출현 여부도 원·달러 환율의 변수가 될 수 있다. 경기 침체가 나타나면 안전자산인 달러화로 돈이 몰리면서 다시 달러화 강세가 커지고 원화 가치가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경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