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사태 원자재값 폭등… 식량·인력·석유 등 부족 심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폭등과 코로나19 팬데믹이 촉발한 공급망 붕괴로 글로벌 경제가 수십 년간 경험하지 못한 ‘결핍의 인플레이션’ 시대를 맞을 것이라는 경고가 커지고 있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물건을 살 수 있었던 ‘풍요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선진국마저 물자 부족에 따른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 블랙록의 롭 카피토 공동창업자는 최근 텍사스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해 “수퍼마켓에서 모든 물건을 접하는 ‘특권‘을 누려온 세대(entitled generation)’가 일손부터 석유·주택·반도체 등의 부족으로 ‘결핍의 인플레이션(scarcity inflation)’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현상이니 안전벨트를 매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기를 촉발한 것은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붕괴다. 지난해 세계 경기 회복으로 살아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물자 부족과 가격 인상이 이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인플레이션에 불을 붙였다. 자원 수출국 간 전쟁으로 공급이 줄어든 데다 신냉전 구도 속에 자원의 무기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고물가를 부채질했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인 러시아가 루블화 결제를 내세워 수출을 틀어막은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들이 원유 증산을 꺼리기 때문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골드만삭스원자재지수(GSCI)는 올 1분기에 29%(전 분기 대비) 넘게 올라 1990년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문제는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인플레이션이 글로벌 경제를 집어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전쟁이) 한동안 질질 끌 수 있다. 며칠 또는 몇 주보다 훨씬 길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는 이미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올 3월 무역수지는 1억4,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3월 무역수지가 적자에 빠진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이다. 민간 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밀가루·식용유 같은 수입 식자재 값이 오르면 극한 경쟁에 몰린 자영업자들이 손해를 떠안게 된다“며 “코로나19로 기초 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물가 충격까지 받아 900조 원에 이르는 자영업자 부채가 일시에 부실화되는 소상공인발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