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10만 명 넘어 기존 기록의 1.5배
몰려드는 이민자들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는 미국만이 아니다. 미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멕시코에도 올해 난민 신청 건수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고 멕시코 정부가 밝혔다.
안드레스 라미레스 멕시코 난민지원위원장은 2일 트위터에 올해 1∼10월 난민 신청건수가 10만8천195건을 기록해, 종전 최다였던 2019년 전체보다 53.8% 많다고 밝혔다. 전 정부 시절인 2013∼2018년 6년을 합친 것보다도 80.7%가 많다.
국가별로는 아이티 출신이 3만8,849명으로, 온두라스(3만3,578명)를 제치고 최다 신청 국가가 됐다.
멕시코 난민 신청자가 급증한 것은 미국으로 가려는 중남미 이민자들이 크게 늘어난 것과 맞물려있다. 지난 1년간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적발된 밀입국자의 수는 170만 명으로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행에 성공하지 못한 이민자들이 대신 멕시코에 정착하거나, 당분간 멕시코에 머물면서 미국행에 재도전하려 하는 경우도 늘어난 것이다. 아이티인들 중에선 미국 국경을 넘었다가 본국 추방을 피해 멕시코로 다시 후퇴한 이들도 있다.
이러한 아이티인들이 멕시코에서 난민으로 받아들여지는 비율은 다른 국적 이민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낮다. 멕시코 정부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와 온두라스 출신 신청자 중엔 각각 97%와 87%가 난민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아이티인의 경우 40%만 난민으로 인정된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라미레스 위원장은 최근 늘어난 아이티인들은 모두 브라질과 칠레로 한 차례 이민했던 이들이어서 폭력 등에서 탈출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대부분 미국행을 희망하기 때문에 진짜 난민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발표된 연방 정부 통계에 따르면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다 붙잡히는 불법 이민자 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회계연도 기준 연방 세관국경보호국(CBP) 통계에 따르면 이 기간 멕시코를 비롯한 국경지대에서 적발된 불법 이민자가 17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2년 이후 매 회계연도 평균 54만명에 비해 3배 넘게 높은 수치다. 특히 멕시코 국경에서는 166만 명이 적발, 역대 최고인 2000년(164만 명) 기록을 갈아치웠다.
여기에는 국경지대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고 이민자에 대한 ‘무관용’ 정책으로 일관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장벽 건설을 중단하고 이민자에 상대적 포용 입장을 밝힌 바이든 대통령 취임이 영향을 미쳤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실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불법 이민자 수는 130만 명에 달하고, 특히 지난 7월과 8월에는 각각 2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국경을 넘다가 구금됐다.
출신 나라별로는 멕시코 국적자가 60만8,000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온두라스(30만9,000명) 과테말라(27만9,000명), 엘살바도르(9만6,000명) 등 순이었다. 정정 불안으로 난민이 대거 늘어난 아이티를 포함해 베네수엘라, 쿠바, 브라질 등 기타 국가로 분류된 나라 출신도 36만7,000명에 달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불법 이민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표적 골칫거리다. 그는 대선 기간 미국을 이민자에 보다 관대한 나라로 만들겠다며 트럼프와 차별화를 공언했지만, 밀려드는 불법 이민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급기야 지난 9월에는 1만5,000명의 아이티 난민이 몰려들며, 말을 탄 국경수비대가 이들을 가축 몰이하듯 쫓아내는 장면이 그대로 공개돼 국내외의 큰 비난을 사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 트럼프 시절 사실상 국경을 봉쇄하다시피 하며 그 반작용으로 이 같은 급증 사태가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경제가 악화한 것도 난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