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세월 때문에 못 만 난지 일 년도 더 되었던 여고 동문들이
모처럼 따뜻한 봄날에 넓은 챙 모자들 쓰고 가볍게 운동화 신고
20여명이 연두 빛 공원에서 만났다.
오늘은 90대 선배님 부부가 며칠 후 고국으로 역 이민?을 떠나는 송별회로 모인 것이다.
헤어지는 섭섭함이 울적하기도 하 것만 그러기엔 코로나로 묶였던 사슬에서 모처럼 해방되어 튀어 나온 기쁨과 반가움으로 맑은 하늘만큼 여고시절 소풍 온 듯 모두 들떠 있었다.
식사 후 첫 순서로
동문회 총무 남편인 우리교회 장로님이 기도를 하게 되었다. 늘 우리 동문을 위해 봉사정신이 투철하여 나는 그분께 ‘수도의 사위’라 불렀다. (모교가 서울 수도 여고) 기도를 시작하는 찰라 청각이 좋지 않은 의사 였던 왕 선배님이 갑자기 일어서서 기도를 시작하시는 것이다. 모두 당황하여 눈을 뜨고 웃음을 참았고 그냥 해프닝을 마다하지 않고 모두 머리를 숙였다.
연달아 장로님이 기도하시고 내게는 추억담을 주문하였다.
나는 아주 똑똑한 선배의 결정이니 부럽다고 진심으로 축하를 하였다.
학생시절 전교생 앞에서 늘 우등상을 수상하였던 선배는 서울대학 졸업 후 모교에서 교사로 근무 하였었다. 그래서 후배들은 선배님을 스승으로 모셨다.
병들고 늙으니 너무 외로워 고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의 갈등이 있었던
나 였기에 선배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하며 축하해 드린다.
얼바인에서 아틀란타에서 언 50년을 살다가 고국으로 떠나는 선배가 내심 부러워
존경스럽기도 하다.
15년 전 이민 올 때 갖고 왔던 아끼던 겨울 모자가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쓰게 되지를 않아서 한국은 추우니 가서 쓰시라고 포장지를 뜯어 보였다. 선배님은 너무 좋아하며
‘어머나 타렌트 같겠네...’ 라며 예쁘게 웃는다.
우리 나이에 다시 만날 보장은 없다. ‘거사필반’ ‘회자정리’를 생각하며 선배를 바라보니
주름진 눈가가 붉어 있었다.
귀국 날짜는 아직 20여일 남았지만 이별은 간단히 하고 싶어 다시 만나지 않으려 한다.
떠나는 날 까지 두 분 넘어지지 말고 무사하기를 바라며 처음으로 따뜻한 허그를 하였다.
*아틀랜타 문학회에서는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한인들의 참여를 고대합니다 (fantasyunm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