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군을 동원해서라도 시위를 진압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드는 발언을 했다.
군 동원은 마지막 수단이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한 것이다.이날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것으로 전해졌는데 항명이나 다름없는 국방장관의 행보에 미 언론에서는 경질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에스퍼 장관은 이날 브리핑을 자청, “법 집행에 병력을 동원하는 선택지는 마지막 수단으로만, 가장 시급하고 심각한 상황에서만 사용돼야 한다”면서 “우리는 지금 그런 상황에 있지 않다. 나는 (군 동원을 위한) 폭동진압법 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틀 전 주지사들이 주방위군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지 않으면 군을 동원해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경고한 상황에서 이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드는 브리핑을 한 것이다. 브리핑은 CNN방송 등을 통해 생중계됐다.
에스퍼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마찰을 피하는 ‘충성파’ 라인으로 분류돼 온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 발언이다. 그는 이날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교회 방문 이벤트’에서 거리를 두는 발언도 했다. 교회 방문에 동행하게 될 것은 알았지만 사진촬영이 이뤄지는지는 몰랐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평화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백악관 앞 교회를 방문, 에스퍼 장관 등 핵심 참모들과 카메라 앞에 섰다가 비난을 샀다.
에스퍼 장관은 백인 경찰의 무릎에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목숨을 잃은 사건에 대해 “끔찍한 범죄”라면서 “인종주의는 미국에 실재하고 우리는 이를 인정하고 대응하고 뿌리뽑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결이 다른 발언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스퍼 장관의 이날 발언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CNN방송이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사석에서 에스퍼 장관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핵심 참모들도 에스퍼 장관이 장악력이 약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확실히 편들지 않고 있다는 불만을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CNN은 전했다.
케일리 매커너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필요하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폭동진압법을 사용할 것”이라며 에스퍼 장관의 발언에 다시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에스퍼 장관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는 즉답하지 않은 채 “현재까지 에스퍼 장관은 여전히 장관”이라며 “대통령이 신뢰를 잃으면 여러분이 제일 먼저 알게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언론에서는 경질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고 해도 에스퍼 장관이 직을 유지할지 의문이 제기돼 왔는데 오늘 발언으로 낙마 시점이 빨라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 전역에 시위가 이어지는 위기 상황인데다 대선이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경질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에스퍼 장관의 이날 발언으로 미국의 시위 국면이 ‘대통령 대 국방장관’의 충돌로 비화하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에스퍼 장관은 이날 브리핑 전에 백악관에 주요 내용에 대한 언질을 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