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달 7일 오클라호마주 포트실의 정부 시험장.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이 개발한 레이저 무기 ‘아테나(Athena·Advanced Test High Energy Asset)’ 시스템의 성능 시연회가 열렸다. 타깃은 21세기 전장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무인항공기(드론)였고, 결과는 레이저의 완승이었다. 록히드마틴은 “아테나가 소형 드론 여러 대를 추적, 격추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2. 지난해 12월5일 러시아 타스통신은 신형 레이저 무기 ‘페레스베트(Peresvet)’가 실전 배치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그해 3월 국정연설에서 “레이저 무기 개발에서 현저한 성과가 나왔다”고 자랑하면서 존재를 처음 알렸던 무기체계였다. 러시아 측은 제원과 성능을 비밀에 부치고 있으나, 방공·미사일방어 시스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 드론 격추‘아테나’시연
러, 방공·MD 시스템 실전 배치
중, 세계 첫 레이저 소총 선보여
전쟁의 룰 선점 위한 경쟁 속
미는‘카운티 레이저무기’추진
또 다른 신형무기 개발 부채질
세계 각국의 레이저 무기 개발 경쟁이 불붙고 있다. 전통의 군사대국 미국과 러시아뿐 아니라, 독일과 이스라엘도 이미 전력화에 성공했다. ‘군사굴기’에 나선 중국의 레이저 무기화 수준도 상당하다. 페레스베트를 가리켜 “더 이상은 개념이나 계획이 아니다”라고 했던 푸틴의 말마따나, 레이저 무기 실용화는 엄연한 현실이 됐다. 레이저 광선이 적의 비행기와 미사일을 격추하는, ‘스타워즈’ 같은 SF영화에나 등장했던 상상의 장면이 이제는 ‘실제 상황’으로 벌어지는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군사강국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레이저의 무기화에 힘을 쏟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레이저 무기는 ‘지향성 에너지(directed-energy)’를 활용하는 특수무기다. 한 방향으로 엄청난 양의 광자(光子)를 지닌 빔(beam)을 표적에 발사, 수천 도의 열을 표면에 가함으로써 태우고 폭발을 일으키는 방식이다.
장점은 이같은 작동 원리에서 기인한다. 무엇보다 ‘빛의 속도’로 나아가는 만큼, 발사와 거의 동시에 목표물을 파괴할 수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보다 5만배 빠른 속도다. 때문에 적의 공격 미사일이 가까이 접근해도 즉시 대응(방어 요격)이 가능하다. 군사전문가들이 “미사일방어(MD) 시스템 도입, 특히 드론 무력화에는 안성맞춤”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방어나 정밀타격에 적합하다는 뜻이다.
경제적으로도 유리하다. 예컨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요격 미사일은 한 발에 100억원이 넘는 반면, 레이저빔 한 발에 드는 비용은 고작 1,000~2,000원 정도다. 일단 발사 시스템만 구축하면 유지 비용은 거의 안 드는 셈이다. 또, 소음이 없고 육안 식별도 힘들다는 점에서, 발사 지점이 적에게 노출될 위험도 별로 없다.
물론 단점이나 한계도 있다. 발사 후에도 목표물을 계속 쫓는 다른 유도무기와는 달리, 오로지 직진만 가능하다. 경로·속도 수정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차피 광속인데다, 비용도 저렴한 만큼 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해결해야 할 진짜 과제는 따로 있다. 바로 전기 문제, 곧 출력이다. 의료용·산업용 레이저 장치의 출력은 1mW~수kW급이지만, 군사용 무기는 다르다. 소형 드론 격추를 위해선 50~60kW급, 대전차 미사일 요격 시에는 100kW급, 순항미사일 파괴에는 300kW급의 레이저 출력이 각각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파괴력뿐 아니라 사거리를 늘릴 때도 출력을 높여야 한다. 결국 전기를 공급할 배터리 용량이 관건인 것이다. 장갑차나 함정, 전투기 등에 장착하려면 배터리의 소형·경량화도 필수적이다.
최근 들어 가속화하는 레이저 무기 개발은 이런 제약들을 극복해 낸 결과다. 선두주자는 역시 미국이다. 2017년 7월 미 해군은 세계 최초로 레이저 무기 실전 배치에 들어갔다. 중동 걸프만의 상륙함 폰스호(USS Ponce)에 레이저 미사일 시스템(LaWS)을 장착한 것이다. 당시 크리스토퍼 웰스 함장은 “총알보다 정확한 무기로, 해상ㆍ공중ㆍ지상의 모든 적을 요격할 수 있다”고 CNN방송에 설명했다. 출력 30kW, 사거리 1.6km의 능력을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공군도 이미 출력 50kW, 사거리 3~5km인 레이저 무기를 실전에 배치했고, 지속적으로 성능 개량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 시연회를 한 아테나도 공군이 운용할 이동식 지상기반체계 무기다. 미 IT 매체 씨넷에 따르면 2015년 개발된 아테나 첫 모델은 10kW급 레이저빔 3개를 하나로 묶어 30kW급 빔을 형성했는데, 최근 테스트를 마친 아테나의 에너지 수준은 공개되지 않았다. 공군은 F-15 전투기, F-35 스텔스 전투기에도 공대공 미사일 방어용 레이저 무기를 장착할 방침이다.
육군의 경우, “2022년 스트라이커 장갑차 4개 소대에 50kW급 레이저포를 탑재할 계획”이라고 폭스뉴스는 전했다. 드론과 헬리콥터, 미사일 등에 대한 요격 능력 확보가 목표다. 닐 서굿 중장은 “이제 에너지 무기를 전장에 보낼 시점”이라며 “육군은 군 현대화 계획의 일환인 레이저 무기 도입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더 이상 연구나 시연 노력이 아니라 전략적 전투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와 중국도 무서운 기세로 미국을 따라잡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야심작 ‘페레스베트’ 실전 배치와 관련,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미국이 ‘대응의 필요성’을 인식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심지어 “우리는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 있다”고도 했다. 구체적인 정보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지난해 12월 유리 보리소프 부총리(국방·우주산업 담당)는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몇 분의 1초 안에 목표물을 파괴할 수 있다”며 “이런 시스템이 실현된 게 오늘날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중국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7월 세계 최초로 개발된 레이저 소총 ZKZM-500이 대표적이다.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이 무기의 제원은 ▲무게 3kg ▲15mm 구경 ▲유효 사거리 800m 등이다. 충전식 리튬배터리로 전력을 공급하며, 2초에 한 번씩 최대 1,000발을 발사할 수 있다. 살상 무기는 아니지만 인체에 닿으면 화상을 일으키고, 창문 통과도 가능하다. 시제품 생산, 야전 테스트 등이 모두 완료돼 대량 생산을 거쳐 대테러부대에 지급될 예정이다. 게다가 올해 초 미 국가정보국(DNI)은 보고서에서 “중국은 이미 제한적 수준의 위성 타격용 레이저 무기를 보유 중이며, 2020년 저고도 위성의 광학장비를 교란할 수 있는 지상배치형 무기를 실전 배치할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레이저 무기 개발 경쟁이 또 다른 신형 무기 개발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미 안보전문매체 내셔널인터레스트는 지난달 9일 “전 세계가 강력한 레이저 무기 개발을 위해 분투하는 사이, 펜타곤(미 국방부)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며 “전투용 레이저를 파괴할 무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고출력에너지레이저무기(HELW)’를 무력화할 ‘카운터-에너지레이저무기(Counter-HELW)’를 개발 목표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이 매체는 “전쟁의 룰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모든 무기는 결국 반격용 무기와 맞닥뜨린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폭격기가 전투기를 낳고, 탱크는 대전차미사일을 낳았듯이, 레이저무기도 언젠가는 ‘C-HELW’라는 적수와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김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