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 통해 정확한 집값 산정 홍보
‘집사서 수리 되팔기’90일 안에
질로우·오픈도어 등 벤처기업 앞서가
오늘날 첨단 디지털 시대에도 집을 팔고 사는 일은 끈질기게 아날로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부분 거래는 여전히 부동산 에이전트와 함께 시작되고 부동산 사무실에서 수많은 서류에 서명하는 걸로 마침을 맺는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온라인 부동산 회사들의 움직임을 보도하면서 첨단 ‘i바잉’ 주택시장 동향을 분석했다.
실리콘밸리는 이제 아날로그 중심의 주택 거래 패턴을 바꾸려 들고 있다. 하이텍 기업들이 오픈하우스를 열고 디지털 클로징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주거용 부동산 시장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들 온라인 부동산 회사들은 과거와 달리 직접 부동산 거래를 진행한다. 특히 ‘인스턴트 바잉’이라 불리는 과정을 통해 대량으로 주택을 구입한 뒤 수리를 하고 다시 시장에 내놓고 있다.
온라인 부동산 시장에서 자리를 굳힌 질로우(Zillow)를 비롯해 오픈도어(Opendoor)나 오퍼패드(Offerpad) 같은 벤처기업까지 새로운 주택 매매를 통해 수십 억 달러를 움직이고 있다. 이들 회사들은 기존의 주택 가격 측정 기준에다 복잡한 알고리즘 AI 방식을 접목해 주택의 시세를 정확히 매겨주겠다고 홍보하고 있다.
첨단 기술을 동원해 셀러와 바이어 모두를 위해 보다 효과적이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온라인 주문 배달과 교통 수단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 왔는데,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이 부동산 거래를 개선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픈도어 CEO 에릭 우는 “클릭 몇 번으로 당신의 집을 팔 수 있게 된다”고 장담한다. 그러나 주택은 우버(Uber)나 리프트(Lyft)가 다루는 택시와는 근본이 다르다. 우버를 이용했다가 회의에 늦으면 20달러를 손해보는 것에 그친다.
하지만 대부분 미국인에게 주택은 가장 큰 자산이고 집을 산다는 것은 인생 최대 거래가 된다.
이같은 디지털 부동산 기업의 오프라인 매매 동향에 대해서는 찬반이 갈린다. 옹호론자들은 ‘i바잉’이라고도 불리는 인스턴트 바잉으로 자본집약형 비즈니스인 부동산 시장에서 이익 가능성을 정밀하게 투자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비판론자들은 주택 업계의 안정성을 해치고 시장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미 2000년대 초 부동산 시장의 붕괴로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부동산 중개회사 레드핀(Redfin)의 CEO 글렌 켈먼은 “집 한채마다 어떻게 투자 소득을 거둘 수 있을지 뚜렷한 대책도 없이, 주택 구입에 거액을 쏟아붓는 건 위험한 짓”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는 주택 시장은 물론 자본 시장까지 모두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스턴트 바잉은 전체 주택 시장에서 볼 때 아직 작은 규모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성장 속도는 무섭다. 질로우는 지난해 700채 이상의 주택을 사들였다. 앞으로 3~5년 안에는 매달 5,000채의 주택을 매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i바잉’ 바람을 처음 일으킨 오픈도어는 지난해 1만1,000채를 사들였으며 1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해 여세를 몰아가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집을 사서 수리하고 파는 모든 일을 90일 안에 끝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사실상 거의 소유하지도 않는 셈이다.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는 모든 주택 거래의 6%를 인스턴트 바잉이 차지하고 있다. 레드핀은 ‘i바잉’이 주택 시장의 지형을 어떻게 바꿔가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레드핀은 캘리포니아부터 콜로라도, 텍사스에 이르기까지 자체 개발한 ‘레드핀나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주택을 대대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심지어 콜드웰뱅커(Coldwell Banker)나 센추리21(Century21) 같은 기존의 부동산 회사들까지 인스턴트 바잉 프로그램을 도입한다고 밝혔을 정도다. 이런 첨단 거래 방식이 전통적인 부동산 브로커 비즈니스에 위협이 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앞으로 대세를 이루게 된다면 차리리 얼른 받아들이는 게 나을 지 모른다.
집을 빨리 팔아야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집값이 크게 깎이게 된다. 하지만 인스턴트 바잉이라면 집값이 훨씬 조금 내려가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보통 거래보다 1~2% 정도만 깎아주면 신속하게 집을 팔 수도 있다.
집을 팔려고 대대적으로 수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피닉스에 거주하는 도라 캐그네토는 올해 타운하우스를 팔려고 결정했다.
부동산 에이전트는 37만5,000 달러를 받을 수 있고 어쩌면 39만 달러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집을 잘 팔려면 카펫을 새로 깔고 페인트도 칠해야 했다. 나이가 68세이고 최근 은퇴까지 한 처지에 일이 너무 많았다.
어느날 카펫을 거둬내고 난 뒤 우연히 질로우의 온라인 광고를 보게 됐다. 그녀는 자기 집 사진을 온라인에 올리고 질로우의 답변을 기다렸다. 질로우가 제시한 가격은 38만2,000달러였다. 약간의 비용만 질로우에 내면 됐다. 게다가 수리도 전혀 할 필요가 없고 오픈하우스도 하지 않아도 됐다. 더구나 질로우는 캐쉬로 지불했다.
“아들은 ‘내가 다 할 수 있었는데’하고 돈을 조금 더 받을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그런 일을 하고 싶지가 않아요. 사람을 고용하고, 카펫 공사를 하고 페인트 칠을 하는 게 다 힘든 일이에요.”
현재 피닉스는 ‘i바잉’의 허브가 돼 가고 있다. 새로 짓는 집들이 이어지고 주택단지들이 계속 들어서는 중이다. 주택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지역 경제의 주택 구입 여력도 아직 충분하다. 네바다 주의 라스베이거스 또한 피니스처럼 인스턴트 바잉이 급성장하는 곳이다.
그러나 북동부 같은 지역에서는 ‘i바잉’이 정착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산적해 있다. 워낙 옛 방식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데다 날씨도 문제다.
눈과 비, 습기와 바람 등으로 주택을 수리하는데 드는 비용이 훌쩍 상승하기 때문이다. 또 주택 단지가 일정하게 구역별로 정리된 게 아니라서 알고리즘 첨단 기술이 주택 가치를 측정하기도 쉽지 않다. 이 지역은 집값도 비싸서 자칫 실수라도 하면 회사가 짊어질 리스크도 상대적으로 크다.
기업들이야 시스템을 개선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전문가들의 말은 다르다. 컬럼비아대학교 부동산 경제학과 크리스 마이어 교수는 “주택 매매 비용을 높이는 요소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건 모기지를 파는 것과는 달라요. 모기지 세일은 모두 같은 모기지를 팔고, 한 비행기에 다 함께 좌석을 얻어 타는 셈이지만 주택 판매는 다릅니다.”
사실 스마트폰 몇번 클릭으로 집을 팔 수 있다는 에릭 우의 바람이 이뤄지려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알고리즘 인공지능이 ‘i바잉’을 통한 주택 구입자의 예상 가격을 측정하는데 도움을 주기는 한다.
그러나 그게 최종 오퍼는 아니다. 아직 인간이 결정해야 할 구석이 많은 것이다. 기둥에 금이 갔는지, 부엌을 새로 다 고쳐야 할 지, 인스펙터가 발품을 들여 꼼꼼히 둘러봐야 하기 때문이다.
애리조나 주 피닉스는 인공지능 부동산 거래 ‘인스턴트 바잉’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Caitlin O’Hara for The New York Times>
온라인 부동산회사들은 대거 주택을 구입해 수리한 뒤 되팔고 있다.
<Caitlin O’Hara for The New York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