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보라카이는 여행잡지‘트래블앤드레저(Travel & Leisure)’에서 2016년 독자가 꼽은 세계 최고의 섬 2위에 올랐다. 이런 인기엔 근거가 있을 것으로 여겼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이버나 서퍼에겐 천국이지만 배낭 여행자가 확 매료될 환경은 아니다. 덥고 습한 이 섬에서의 첫 날, 잘못 왔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럼에도 이곳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공항에서 보라카이로 이동하기
보라카이는 필리핀 중부 파나이 섬에 딸린 작은 섬, 칼리보 국제공항에서 카티클란 항구로 이동해 다시 배를 타야 닿는 곳이다. 섬으로 가는 교통편은 세 가지다. 공항에서 바로 사우스웨스트 버스나 밴을 타든지, 공항 외곽으로 이동해 세레스 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다.
우선 사우스웨스트 버스. 버스만 이용하거나, 버스+보트 패키지, 그리고 숙소까지 데려다 주는 서비스까지 옵션이 다양하다. 버스와 보트를 포함해 시내 중심까지 택시로 내려주는 패키지는 577.5페소다. 가장 비싸지만 그만큼 편하다.
두 번째, 밴은 공항에서 어슬렁거리면 따라붙는 ‘호객꾼’과 흥정을 하거나 환전소 옆 창구에서 직접 이용할 수 있다. 일정 인원을 태워야 출발하는 시스템이기에 언제 출발할지 아무도 모른다. 가끔 적은 인원으로 출발해 택시처럼 현지인을 태우기도 한다. 중앙선 침범, 심한 커브에서 추월 등 나쁜 건 다 한다. 멀미를 한다면 피해야 할 교통편이다. 카티클란 항구까지 대략 200페소다.
세 번째는 공항에서 트라이시클을 타고 세레스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한 뒤 카티클란행 버스를 타는 방법이다. 짐이 많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카티클란 항구에서 다시 보트를 타고 카그반 항구로 이동해 트라이시클로 숙소까지 험난한 여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환승만 네 번이다. 트라이시클과 버스 요금을 합하면 카티클란 항구까지 최소 261페소가 든다.
세 가지 방법 모두 장단점이 있다. 아무리 쫀쫀한 배낭 여행자라도 가격보다 본인의 스타일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 좋다.
트라이시클을 탈 때 협상은 필요하지만 흥정에 힘을 뺄 필요는 없다.
여기는 휴양지다. 놀러 와서 얼굴 붉히지 않으려는 심리를 파악하고 있는 상대와 협상하는 게 쉽지 않다. 일단 숙소에 적정한 가격을 묻는다. 인생은 삼세판, 그 가격대로 3명의 기사와 협상하다가 안되면 10페소씩 소심하게 올려본다. 섬에서 공항 방면으로 나가든, 반대든 배 시간이 다가오면 흥정은 대략 불가다. 어디를 가든 외국인이라면 100페소부터 부르고 본다. 정식 요금표는 붙어 있지만 난독증에 걸릴 듯 글씨가 작다. 흥정 없이 요금표 그대로 내는 뚝심 있는 행동도 추천한다.
해변에서 산미구엘 맥주와 낙조를
섬의 남서쪽 4km의 화이트비치가 보라카이의 명당 해변인데, 보트스테이션 1~3구간으로 나뉜다. 워낙 사람이 몰리는 곳이라 장사꾼이 활개를 친다. ‘투어 하는 게 어때, 마사지는 어떠니, 네 이름으로 모래성 만들어줄까?’ 등 분 단위로 각양각색 남녀노소 장사꾼이 접근해온다.
스테이션1은 별을 여러 개 단 호텔과 리조트가 있는 부촌, 스테이션2는 대형 야외 상점가인 디몰(D’Mall)과 드탈리파파(d’talipapa) 시장이 있는 상업 번화가다.
배낭 여행자가 무념무상으로 수영하기 좋은 곳은 스테이션3에서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간 구간이다. 일단 인적이 드물다. 비치타월 하나면 충분할 나무그늘도 넉넉하다. 제법 경제적인 호텔과 리조트가 몰려 있고, 늦게까지 진행하는 ‘해피아워 프로모션’도 즐길 수 있다.
깔끔하게 셔츠를 입은 종업원이 비치의자 앞까지 배달하는 산미구엘 맥주가 1병에 35~40페소, 마트보다 싼 게 미스터리다. 취기가 올라올 때쯤 해변도 붉게 물들고 보라카이를 천국이라 불러 본다.
하루의 일탈, 호핑 투어로 반나절 누리기
스스로 판단해 최대로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가 물장구 정도라면 호핑 투어를 해 볼 만하다. 보트로 크리스털코브(Crystal Cove)와 푸카비치(Puka Beach) 등 섬 주변을 돌아보고 스노클링을 즐기는 상품으로, 음료가 포함된 뷔페 점심까지 포함한 반나절 코스다.
투어의 핵심은 시내에서 제법 먼 푸카비치. 화이트비치에 비해 인파가 훨씬 적어 무인도에 상륙한 듯한 환상까지 느껴진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물속은 완벽하게 투명하고 더 높아진 하늘은 경이롭다. 한 야외 바에선 밥 말리의 음악이 찐득하게 울렸다. ‘노 우먼 노 크라이(No Woman, No Cry)’가 이곳 분위기와 썩 어울린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므로(Everything’s gonna be all right!)
투어 가격은 600페소. 웬만하면 숙소를 통하거나 여행사 사무실에서 직접 예약할 것을 추천한다. 간혹 길가에서 ‘먹튀’ 가이드를 만나 참변을 당할 수 있다.
불장난과 함께 즐기는 여름 밤의 뷔페
배낭 여행자를 위한 저렴한 식당도 꽤 있다. 바비큐 요리를 하는 필리핀식 패스트푸드점인 ‘망이나살(Mang Inasal)’을 비롯해 현지인을 상대로 하는 식당이 널린 편이다. 번지르르한 레스토랑조차 부담 없는 가격대다. 다만, 12%에 달하는 부가세와 10%의 서비스 요금이 따라붙는 게 속상할 뿐.
저녁의 화이트비치는 불구경과 뷔페 잔치로 요약된다. 호텔도 레스토랑도 ‘샤우팅 창법’의 야외 음악 공연과 뷔페 요리를 주 무기로 내세운다. 가성비가 좋다는 파라다이스가든 리조트 호텔&컨벤션 센터를 찾았다. 돈을 지불하면 종이 팔찌를 찬 뒤 해산물과 고기 위주의 메인 메뉴와 애피타이저, 디저트까지 골고루 맛보기가 가능하다. 새하얀 이를 드러내는 친절한 서비스는 덤이다. 물놀이에 지친 몸을 하루쯤 보양하기에 제격이다. 가격은 부가세와 서비스 요금을 포함해 646.60페소.
칼리보 국제공항 출국할 때 주의할 점
칼리보 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려면 보라카이 숙소에서 5~6시간의 여유를 두고 출발해야 한다. 공항은 인기 가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입구에서 짐 검사부터 하고 수속을 하기에 줄 서기 공포가 문 밖까지 이어진다. 짐 검사가 끝나면 항공사별로 탑승권을 발급받은 뒤 공항세를 낸다. 미리 700페소를 빼놓으면 편리하다. 그렇지 않으면 창구 직원과 거스름돈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등 짜증 지수가 치솟는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해피아워’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동안 보라카이 해변에서 맛보는 칵데일은 40~70페소, 산미구엘 맥주는 35~40페소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종업원의 미소는 덤이다.